거미는 지능을 갖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선 지능이 무엇인가 정의하여야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Intelligence
백과사전을 참조해봤자 어려운 얘기가 잔뜩 써 있을 뿐이다. 지능이라는 용어는 의식, 기억, 목적, 이런 것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지능에 대한 유명한 판정법에는 중국어 방 검사가 있다.


물론 중국어 방 검사는 지능과 인공지능을 구별할 수 없다는 뜻이며,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대답을 하더라도 그것이 지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중국어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중국어 방 전체는 중국어를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나는 이에 대해서 아직은 답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난 지능을 내 맘대로 정의하겠다.

거미에게 지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서는, 거미에게 뭔가를 물어봐야 하는데, 거미가 외부와 소통하는 방식은 거미줄이다. 따라서 거미줄을 건드리거나 거미줄 위에서 거미가 움직이는 것들이 거미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각주:1] 거미에게 지능이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서는, 지능을 정의하고 그 지능이 "거미의 지능"인 경우 어떻게 검사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안해야 한다.

지능이란 지능이 있다고 믿어지는 임의의 다른 객체로부터(reference) 지능이 있다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튜링이 제안했으며, 튜링 검사라고 부른다. 사실 이렇게 지능을 정의하면 재귀적으로 정의해야 하고, 다른 객체의 지능은 또한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무한 회귀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그 무한 회귀를 끊는 것 또한 지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지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므로 인간을 참조하여 거미의 지능을 판정해 보자.

이제 우리는 거미를 위한 튜링 검사를 설계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거미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거미줄 뿐이다. 예를 들어, 거미줄의 위쪽 두번째 줄을 흔드는 것은 거미에게 "How are you?"라고 물어보는 것일까? 그렇다면 거미는 그곳으로 달려와서 그곳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이건 먹는거임?"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이것을 인간에게 시킨다고 하자. 인간이 거미가 될 수는 없으므로, 실제 거미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들고, 이것의 조작을 인간에게 맡긴다. 물론 이 로봇은 겉보기에는 거미와 구별할 수 없다. 거미 로봇을 거미줄 위에 올려놓고, 거미줄의 위쪽 두번째 줄을 흔들어 보자. 인간은 거미의 행동패턴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그곳으로 달려와서 그곳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이건 먹는거임?"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인간은 거미가 되었다. 따라서, 검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이놈이 거미인지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 인간이 거미를 흉내내고 있음을 알더라도 구별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과 거미는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 (=튜링 검사를 통과했음.)

이쯤에서 독자의 마음 속에서는 "그...그럴듯 하긴 한데, 그건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만 알려주면 뭐든지 따라할 수 있는 만능 기계와, 그 일만 해야 하는 특수 기계는, 적어도 그 만능 기계가 특수 기계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한 결코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라면 거미를 따라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실수할때까지 계속해서 검사를 하여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미를 따라하는 기계를 만들어 보자. 거미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알아낸 거미의 모든 행동패턴을 저장장치에 입력해 놓고, 거미줄에서 특정 입력이 들어오면 그때 거미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기계이다. 이 기계보고 거미 로봇을 조작하도록 한 후, 튜링 검사를 해보자. 만약 둘 다 알려진 행동 패턴 대로만 움직인다면 거미와 거미 로봇은 구별이 안된다. 반대로, 둘중 하나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행동 패턴이 나타난다면, 알려지지 않은 행동 패턴을 한 쪽이 바로 거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거미 로봇은 지능이 없는 기계가 입력된 대로 조작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거미의 새로운 신비를 밝힌 것이다.

다시 인간이 거미 로봇을 조작하는 경우로 돌아오자. 앞서 말했듯이, 거미가 알려지지 않은 행동 패턴을 하는 경우에는 기계가 조작하는 거미 로봇과 구별이 된다. 문제는, 눈앞에 있는 거미줄 위에 있는 거미처럼 생긴 놈이 진짜 거미인지 인간이 조작하는 거미 로봇인지 여전히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실수를 해서 거미 로봇의 조작에 실패한 것인지, 거미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행동패턴으로 움직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이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같은 행동패턴이 반복되는지 살펴볼 수도 있지만, 거미 로봇을 조작하는 인간도 바보가 아니라면 같은 행동패턴이 반복되도록 할 것이며, 그러다가 또 실수를 하더라도 여전히 이게 거미인지 인간인지 구별이 가지 않게 된다. 스파이더 맨은 그렇게 탄생...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본론으로 돌아오자. 뭔가 나의 논리에 반박하고 싶은데 가슴 깊숙히 뭉클 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나 스스로도 그렇다. 거미에게 지능이 있으면, 이번엔 인간이 하는 것을 따라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거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켜야 한다.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물어보자. 거미에게 "인간을 따라해보렴"이라고 시키려면 거미줄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은 모른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거미가 지능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거미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와 대화할 수 없는 것일수도 있고, 거미가 지능이 없어서 거미에게 그렇게 시킬 수 없는 것일수도 있다. 이 두가지 경우는 여전히 구별할 수 없다.

여기까지 살펴 보았을 때, 인간과 거미의 지능 수준이 같다는 논증이 하나 제시되었고, 거미의 지능을 알 수 없다는 논증이 하나 제시되었다. 아마 어딘가 논리적 구멍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논리가 맞다고 한다면 거미는 지능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1. 이것은 개의 언어가 개소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10. 2. 11. 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