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한글은 매우 뛰어난 워드프로세서의 하나이다. 세계적인 워드프로세서인 MS워드, 오픈오피스 등과 견주어도 기능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고, 자랑할만한 몇가지 기능도 많다. 편리한 수식 입력, 강력한 표 처리, 다른 나라에서 따라올 수 없는 한국어 지원 등은 아래한글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많은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단점도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단점들이 아래한글이 가진 장점을 전부 묻어버릴만큼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강력한 서식 기능을 바탕으로 구조적인 글쓰기가 가능한데, 사용자들은 오직 "빈 칸(띄어쓰기, 스페이스 키)"만을 이용해서 서식을 맞춘다는 점이다. 이 경우, 글자를 하나 더 넣거나, 문장부호를 고치거나, 여백을 조정하거나, 들여쓰기를 조절할 경우 해당 문단과 문서 전체를 다 뜯어 고쳐야 한다. "들여쓰기" 기능도 있고 "문단 여백"기능도 있고 "장평"도 조절되고 정말 아름답게 문서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기능이 다 있는데, 아래한글 1.5부터 2.1, 3.0, 97, 2003, 2004[각주:1], 2005, 2007, 2010에 이르기까지 아래한글 문서를 만드는 사람 중에 이런 강력한 기능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아무도 못봤다.

이것이 워드프로세서 기반의 글쓰기 방식의 문제점이다. 문서의 서식과 문서의 내용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쓰는 시점에서 서식을 고려하게 되고, 그 결과 서식을 바꿀 때 삽질을 하게 된다.[각주:2] 아래한글에는 분명히 "목차"만드는 기능이 있다. 이 목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 장이나 절의 제목과 소제목에 "제목" 속성이나 "소제목"속성 등을 부여해 주면 된다. 그리고 이것은 TeX에서 section 태그나 subsection 태그를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이렇게 해서 속성을 부여해 주면 그냥 "목차 만들기" 기능을 통해서 만들면 1장부터 10장까지 쭉 뽑혀져 나온다. 만약 4장이 새로 추가되어 4장부터 10장까지가 5장부터 11장까지 이동했더라도, 새로 "목차 만들기" 기능을 한번 적용해주기만 하면 새로 1장부터 11장까지 쭉 뽑혀져 나온다. 그러나 많은[각주:3] 사람들은 4장을 새로 추가하면 4장의 시작, 5장의 시작, ... 을 찾아서 숫자를 하나씩 고친다.

이것은 처음 만들 때 부터 고려하고 문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나중에 규모가 큰 문서를 만들 때는 어떻게 고칠 수도 없는 문제가 된다.

아침부터 167쪽짜리 보고서 서식 맞추는 작업 하다가 문득 지겨워졌다. 한번 제출하고 두번다시 들춰보지도 않을 문서인데 왜 나는 구조적 문서처리를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1. 한글2004만큼은 칭찬 못해주겠다. [본문으로]
  2. 물론, 이것이 아래한글이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의 잘못은 아니다. 워드프로세서에서는 분명히 서식을 지정하여 일괄적으로, 구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능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안쓰는 인간들이 문제지... [본문으로]
  3. 거의 모든 [본문으로]
by snowall 2011. 3. 28.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