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까지만 해도 대선때문에 블로고스피어가 대단히 시끄러웠다.

블로거들에게 가장 우스운 일이면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한국 블로거 연합의 출범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어째서 이슈가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많은 블로거들이 해 주었었는데, 나름의 대답을 하자면 "저들만 블로거인가?" 일 것이다. 한국 블로거 연합의 출범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블로거들이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 발기인들은 블로거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 블로거 연합은 아무런 대외적 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블로거들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작은인장님이 http://may.minicactus.com/104282 에서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몇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질문들이 있다.

첫째, 블로거 또는 블로고스피어의 실제 세상에 대한 영향력은 작은가? 큰가? 대체 어느쪽일까.
둘째, 블로거들은 실제 세상에 대해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것일까?
셋째, 블로고스피어는 어째서 더 커져야 하는 것일까? 또는, 블로고스피어는 인위적으로 커질 것인가?
넷째, 블로거들은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하나씩 나름의 대답을 하면서 논의해 보도록 한다. 글에 이상한 점이나 오류를 범하고 있으면 지체없이 알려주시기를 바란다.

첫째, 블로거 또는 블로고스피어의 실제 세상에 대한 영향력은 작은가? 큰가? 대체 어느쪽일까.
우선, 영향력이라는 말을 정의하고 시작해야겠다. 이 글에서 영향력이라는 개념은 나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나와 같은 의견을 갖도록 만드는 힘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블로고스피어의 영향력을 기성 언론과 비교하면 미약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어, 하루 10만명 이상의 방문자가 찾아오는 유명 블로거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신문에서 보도되는 또다른 특정 후보에 대한 기사보다 더 많이 보여질 수는 없다. 그런데, 이것은 배포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신문은 한번 배포되고나면 어쨌든 어딘가에서 계속 노출되며 읽혀진다. 하지만 블로거의 글은 하루에 10만명이 보더라도 그걸로 끝이다. 메타블로그 사이트가 그 글만 계속 노출시켜 줄 수도 없는 것이고, 아무리 방문객들이 추천을 올려준다고 해도 다른 글과 섞여 있으면 잘 안보이게 마련이다.
결정적으로 신문은 불특정 다수가 보지만 블로그는 인터넷 유저들만이 볼 수 있다. 블로그를 보는 사람들이 인터넷 유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은, 블로그를 보는 사람이 이미 그 글의 논조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블로그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신문보다 더 작아진다.
물론 이 논리대로라면 블로고스피어가 아무리 커지고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블로그의 페이지뷰가 하루에 백만개든 천만개든 늘어난다 하더라도 블로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신문보다 작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둘째, 블로거들은 실제 세상에 대해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것일까?
여기서도 영향이라는 말의 뜻은 앞서와 같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실제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이다. 블로거는 그 도구를 자신의 블로그로 선택한 사람이다. 질문이 조금 이상할 수 있다. 블로거들은 실제 새상에 대해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미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기호 1번을 지지하는 블로거들, 기호 2번을 지지하는 블로거들, 그런 블로거들 등등이 서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도록 블로그에 수많은 글들을 올렸었다.[각주:1] 대선에 관련된 것 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학술적 측면에서 수많은 글들이 하루에 수천개씩 생산되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메타블로그에 등장한다. 광고로 도배된 스플로그 역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수익을 얻고자 함이니 마찬가지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그 숫자만큼이나 많은 블로거들의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질문을 다시 살펴보자. 블로거가 실제 세상에 대해 영향을 미쳐야 하는 의무가 있는것인가? 그런 의무는 없다. 블로그가 그냥 자기 일상에서 느낀 한줄의 짧은, 타인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단어 하나를 올린다고 해도 역시 블로그다.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어찌되었든 블로거의 선택이다.

셋째, 블로고스피어는 어째서 더 커져야 하는 것일까? 또는, 블로고스피어는 인위적으로 커질 것인가?
블로고스피어는 더 커져야 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나는 활자중독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더 많은 글들이 생산되어서 내가 읽을 거리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블로고스피어가 더 커져야 하는 필연적 이유는 없다. 예전에 등장했던 수많은 웹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블로그 역시 그렇게 언젠가는 없어질 수 있는 인터넷 자원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블로고스피어가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은 블로그를 없애고 싶지 않은, 그리고 자신의 블로그를 더 많이 노출시키고 싶은 각 개인으로서의 블로거의 욕망이 드러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블로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이 블로고스피어로 한정된다면, 블로고스피어가 세상 전체를 덮는 것이야말로 블로거들이 바라는 궁극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블로고스피어가 더 커져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고 본다.
그럼, 블로고스피어는 인위적으로 커질 수 있을 것인가? 블로고스피어의 크기를 재는 어떤 정량적인 도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그 도구로 사용할만한 수치를 생각해 본다면 실제로 글을 쓰고 있는 블로거들의 숫자가 블로고스피어의 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블로그의 태생적 한계때문에 인터넷 사용 인구를 넘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해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활동적인 사람들보다 더 적은 숫자의 블로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각주:2] 얘기가 딴길로 새고 있는데, 어쨌든 블로고스피어를 인위적으로 키우려면 블로거 숫자를 늘려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블로거들이 블로거가 아닌 사람들에게 실제 세상에서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만이 그 인위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세상에서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역량은 각자가 다를 것이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블로그를 해 보라고 권유해서 실제로 그가 블로거가 되느냐 아니냐는 개인의 문제이다. 결국 블로거가 블로고스피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더욱 양질의 블로그를 만들어서 블로거가 아닌 사람들에게 블로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블로거의 영향력과 관계 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어쨌든,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폐쇄하지 않는 한, 블로거가 아닌 사람들은 블로그를 만들게 될 것이므로 블로고스피어는 점점 커져나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에 비례하여 블로거들의 영향력 역시 차츰 커질 것이다.

넷째, 블로거들은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블로거들은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고 내야 할 이유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블로거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데, 개개인이 모두 다른 사람이라면 블로그에 드러난 자신의 모습 역시 모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따라서 블로그에서 주장하는 바는 모두 다른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의 주장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여러개인 블로그가 한개인 블로그밖에 안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같은 주장을 하는 블로그는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블로거 연합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다. 블로거들을 강제로 한 목소리를 내게 하려고 했으며, 그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목표이다.[각주:3]
예를들어서, 최근 서해안에서 유조선 사고로 기름이 흘러나온 사태를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서 봉사활동을 하러 가자고 할 수도 있고, 가지 말자고 할 수도 있고, 가면 안된다고 할 수도 있고, 가야만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사고에 대해 어떤 회사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아무런 책임도 잘못도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떤 주장이든지 그것은 그 블로거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블로거는 "난 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주제로 또한 자기 블로그에 글을 쓰고 트랙백을 걸면 된다. 이것이 곧 블로고스피어가 살아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가령 모든 블로거들이 한목소리를 내서 "모두 서해안으로 달려가서 기름을 걷어내자"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 자체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 주장이 올바른가에 대해 한점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제, 작은인장님이 http://may.minicactus.com/104282 에서 제시한 블로고스피어가 발전하기 위한 세가지 조건에 대한 논의를 해 본다.

1. 포털이나 언론과 같은 외부기관을 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목소리를 퍼트릴 수 있는 시스템(연합체? site?)
이것은 외국의 사례로 슬래시닷을 생각해 보고 싶다. 슬래시닷은 누군가 소식을 올리고 거기에 댓글을 달아서 토론을 하는 사이트로 시작했는데, 점점 커져서 지금은 꽤 영향력 있는 언론 사이트로 발전하였다. 물론 뉴스를 올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한 평가 시스템도 있으며, 평가자에 대한 평가 시스템도 있다. 하지만 블로거들이 올린 글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사이트가 있다면, 그것은 그 정의에 의해 메타블로그 포털이 된다. 그리고 메타블로그 포털 사이트는 기존에 성장한 메타블로그들이 많기 때문에 새롭게 키우기가 힘들다. 하물며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메타블로그는 개인화된 메타 블로그를 제외한다면 만들기 어렵다고 본다.
또한, 수많은 블로거들의 의견이 모여서 하나의 의견이 되었다고 해도, 분명히 그 의견에 반대하는 블로거는 존재하며 그 반대의견 역시 블로거의 중요한 의견이다. 따라서 한국 블로거 연합처럼 하나의 의견만을 제시하는 연합체는 결국 한국 블로거 연합처럼 수많은 블로거들에게 얻어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기성 언론이 블로거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블로고스피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본다. 이것은 내가 앞서 논의한 것과 같이 그리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가진 잠재력은 아마 기성 언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고 본다. 그리고 기성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블로거인 경우가 차츰 늘어나면서 기성 언론은 블로고스피어의 영향력의 범주 안에 곧 들어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2. 블로그를 손쉽게 이사할 수 있는 전문적인 도구(tool, utility)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은 어디까지나 블로거 개인의 저작권을 따른다. 저작권을 업체에 귀속시키는 모 포털 블로그 같은 짓은 참 나쁘다. 따라서 블로그를 손쉽게 이사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인데, 문제는 블로그를 이사하려면, 이사갈 집은 정해졌다 하더라도 이사하고 떠나야 할 블로그에서 이러한 백업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회사 맘대로다. 이러한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블로그 시스템을 만드는데 이러한 도구를 의무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한 이런 도구의 출현은 상당히 먼 일이 될 것이다.
예전에 게시판 이동 시스템처럼 블로그의 모든 글을 하나씩 읽으면서 제목, 글, 댓글 등을 백업받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난 이걸 개발할 능력과 여유가 없다.

3.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시스템(meta?)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에서 사용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메타 블로그의 추천수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일까?


글이 길어지다보니 글에 주제가 없고 잡담이 되었다. 제목에도 잡담이라 적혀 있으니 과히 틀린 제목은 아닌 것 같다. 댓글 및 태클 환영이다.
  1. 여기서 퍼뜩 든 생각인데, 블로거들이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면, 이명박 지지자들의 블로그 역시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은 블로거들이 영향을 미치거나 미치지 않거나 상관없이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고 본다. [본문으로]
  2. 물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관심받고 싶었어요" 욕망의 소유자가 잘못된 길로 빠지면 키보드 워리어가 될 것이니 주의하자. [본문으로]
  3. 애초에 발기인들이 블로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대놓고 관심없다는 말은 한 적이 없으니 그건 빼도록 한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07. 12. 22.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