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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광주로 가는 걸로 마음은 굳혔는데,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다.

1. 나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
뭐...일단 내가 욕먹는 이유는 이게 가장 크다. 병특 자리 얻느라 고생하고 있는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딴데 컨택해서 홀랑 날라버린다는 건데. 이건 내가 솔직히 처신을 잘못한 부분이 있다. 근데, 어쩔 수가 없다. 3주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지원-면접-합격이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주에 합격하는게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저 나갈지도 몰라요"라고 병특 담당자에게 얘기하는건 오히려 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기적인가? 글쎄. 난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설령, 내 선택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 하더라도 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선택한 거니까.

2. 내 대신 일할 사람의 문제
부서 차원에서는 아마 이게 가장 곤란한 문제일 것이다. 당장 내가 나가면 내 일을 받을 사람이 없고, 내 일을 받을 사람을 새로 구하기도 어렵다. 내가 하는 일이 수학/과학 이러닝 컨텐츠가 오류 없이 잘 작동 되도록 하고, 수학/과학 관련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학 교육, 과학 교육을 양쪽 다 알아야 하고, 이러닝이기 때문에 교육학과 교육공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전산 개발 업무의 진행 과정과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수학/과학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덧붙이면, 고객에게서 전화도 많이 오기 때문에 콜센터 능력도 필요하다. 내가 모든걸 전공하진 않았지만, 1년간 직접 개발하면서 시스템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걸 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런 이해가 없는 사람이 나 만큼의 업무 효과를 발휘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3. 회사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
사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다. 내가 나가는 것이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라는 사람 그 자체에 너무 큰 의존성을 걸고 회사의 중요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건 정말 더 큰 문제다. 회사 직원들이 모든 업무를 모두 잘해야 하는건 아니지만, 큰 회사도 아닌데 다른 부서의 업무를 전혀 모른다는 건 일단 문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부서 내의 다른 사람이 전혀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추가로, 10월에 10명이었던 부서원이 12월에 5명으로 줄었으면, 내가 있건 없건 인력 충원이 1명 정도는 있어야 기존에 하던 대로의 업무 부하를 갖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나마도 나가게 된 사람의 일을 내가 다 인계받았고, 내 능력으로 2인분의 일을 하는 건 괜찮지만, 내가 나갈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2인분의 일을 시키는 것은 회사로서는 너무 큰 도박이었다고 본다.

4. 그래서 지적하고 싶은, 배신감 이전의 문제
난 회사가 어떻게 잘 굴러가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내 성향이 회사 경영에는 잘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난 사람에 대한 투자는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나가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든 결과에 상관 없이 나를 대체할 인력을 일단 충원해 놓고 내가 회사에 남게 되면 그 사람을 다른 쪽으로 돌려 쓰거나 나를 다른 쪽으로 돌려쓰거나 했어야 한다고 본다.

5. 결론
아무튼, 12월 중에 광주 과기원과 근로계약을 맺고 출근해야 하는 건 절대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회사와의 인연을 나쁘게 끝낼 수도 없다. 그래서, 주말에 올라와서라도 내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업무 매뉴얼을 쉽고 상세하게 작성하여 인수인계 없이도 매뉴얼만 보더라도 업무가 가능하도록 해줄 생각이다.

어쩝니까...
by snowall 2008. 12. 9.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