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2때 다니던 단과 학원에서 강의를 잘하기로 유명한 수학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항상 수학 문제를 빨리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수학 문제를 빨리 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아요?"
라고 하면서
수학 문제를 칠판에 적고

막...

풀었다. 빠르게.

"수학 문제는 이렇게 빨리 풀면 빨리 풀려요"

다들 좌절한다.

왜?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거든.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옛날에 누군가 그랬다.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아마 유클리드가 한 말일것이다. 아 물론, 수학에는 왕도가 없지만 정석은 있다.

내 개그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아무튼, 수학 문제를 빠르게 푸는 방법은 별로 없다. 오직 끊임없는 연습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 느낀 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까지의 수학은 사실 증명이 거의 없이 단순한 산수에 가깝다. 왜 그렇게 되는지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이 그냥 풀면 된다. 당연히 응용문제가 나오면 고민만 하다가 답을 찍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왜 그럴까? 연습의 대상이 틀렸기 때문이다. 수학에서 연습해야 하는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따져서, 단 하나의 거짓도 없음이 분명한지" 생각하는 것이다.

재미있는건, 학원이나 학교 수학 선생님들이 "비법"이라고 말하면서 수학 문제를 풀 때, "보기"를 하나씩 문제에 대입해보면 정답이 나온다는 걸 가르쳐준다. 그건 비법이 아니다. 수학에서 중요한건 "그게 정답인게 확실해?"이지 "그거 너무 치사하지 않냐?"가 아니다.
정답이라는게 확실하기만 하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접근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좋다. 아니, 세상에 어떤 바보같은 수학자가 "5개중에 하나가 정답이 확실해요"라고 말했는데 무한히 많은 가능성 중에서 답을 찾겠는가. 물론 문제 자체가 틀렸을 가능성을 의심해 보긴 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엔드루 와일즈는 사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직접 증명하지 않았다. 타니야마-시무라 추측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동치라는 걸 알고서, 타니야마-시무라 추측을 증명한 것이다. 누가 비겁하다고 하겠는가?

수학은 그런 학문이다. 남김없이 따져서 맞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니 맘대로다.

재미있지 않은가? 가장 딱딱해 보이는 학문이 사실 가장 자유롭다니.
by snowall 2006. 8. 21.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