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는데 공익광고가 나온다.
"역사는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극복해 왔다고"

사실 그렇다. 우린 위기를 극복해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 그 공익광고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라가 망했을 테니까.
이 공익광고는 원래 "지금은 위기이지만 우리는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절망으로부터의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게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위기를 극복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다행히 우리가 극복해낼 수 있는 위기만이 우리에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위기가 다가왔다면 우리는 그 위기에 패배하고 망해버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내 말은 맞다. 망하지 않았다면 위기를 극복한 것이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망해버렸다면 그 반대인 경우다. 그 중간은 없다. 굳이 그 중간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직 위기를 겪고 있는 도중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위기인지 아닌지는 그 위기가 끝나봐야 알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이겨낼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막연한 희망은 그 희망이 꺾였다고 생각했을 때 절망으로 다가온다. 그 절망은 희망의 크기만큼이나 큰 절망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는 "이겨내겠다"는 의지이다.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또한, 의지가 약해서 꺾이더라도 절망이 되지 않는다. "이겨내지 못했다"는 의지의 꺾임은 "아직 이겨내지 못했다"라는 것으로 그 뒷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었다"라는 말은 죽은 다음에 하자.

위기는 기회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대로 망해 버릴 수도 있는 치명적인 기회다. 물론 위기상황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물러서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러서거나 피할 수 있다면 그건 위기가 아니다. 위기를 이겨낸다면, 앞으로 그와 같은 위기가 다시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

희망은 버리자. 그 자리를 의지로 채우는 것이 좋다.
by snowall 2009. 5. 14. 0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