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공각기동대 시리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내 세계관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름 액션도 있고, 스토리도 짜임새가 있다. 이번에 감상한 공각기동대 SAC SSS는 아주 재미있고, 지난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큰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무엇이냐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들은 질문은 "넌 존재하긴 하는거냐?"이다. 그렇다. 해석기하학과 상대성 이론의 제창자인 르네 데카르트가 미친듯이 고민하다가 "난 생각하니까 존재한다! 이것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분명하다"라고 결론지었던, 바로 그 질문이다.

SSS의 내용은 처음엔 좀 지루하게 이어진다. 여기저기서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자살이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의 해킹에 의해 이루어진 자살이라는 것. 그리고 그 흑막은 사람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집단 무의식이 "댓글의 악플"이라는 형태로 다소 뿌옇게(dilute)나타나지만, 이 작품 안의 세계에서는 집단 무의식은 사람인것처럼 행동하고, 실제로 전뇌 하나를 이용하여 모든 일들을 꾸며낸다. 물론, 그 뒤에는 그 모든 것을 계획한 실제 흑막에 해당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암시를 주지만, 아무튼 드러난 내용은 그렇다.
그리고 스토리의 발단은 아동학대 문제와 노인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는 기가막힌 아이디어를 위해서 초특급 완전비밀의 정부기관이 발족되고, 윤리와 법같은 자질구레한 것은 신경쓰지 않고 목적을 위해 수단은 무엇이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정치인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는 국수주의자이고 민족주의자다. 자기 민족의 순수한 혈통만이 나라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은 참 바보같은 생각이다. 세상에 순수한 혈통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게다가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이미 의체화가 상당히 진행된 동네여서 혈통을 따지는게 민망할 정도이다.

"노인과 난민은 아이도 낳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으며 지금까지 살다가, 늙어서 힘드니까 이제와서 돌봐달라는 건 말도 안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세금을 내야만 한다" 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에 대해, 아라마키 과장은 "궤변이로군요. 그럼 당신들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스스로의 몸과 허영심을 너무 우선한 나머지 실제 사안들을 뒤로 미뤄온 책임은 누가 진단 말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그 정치인, "내가 그 책임을 지고 있다고 자부한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라마키 과장은 "인권과 전뇌 윤리를 무시하고서라도 말입니까?"라고 되묻는다. 이에 대해 정치인은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여전히 당당하게 얘기한다.

나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튼, 공각기동대의 팬이라면 꼭 감상하길 바란다.

by snowall 2007. 10. 13. 1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