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다.

메모리즈를 봤다. 짤막한 감상을 남겨둔다. 무의식중에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

1. 그녀의 추억
서정적인 작품이다. 거대한 장미는 모든것을 빨아들이고, 이것은 마치 한 남자를 사랑한 여인의 욕망을 나타내는 듯 하다. 감독이 내게 시사하는 것은 "영원한 사랑은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라는 말은 참 낭만적인 문장이다. 이 말은 여인을 달콤한 상상속에 빠트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 상상속에 빠져서 익사해버린다면? 그것은 곧 비극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2. 체취병기
주인공이 너무 멍청하다. 지독하게 멍청한 샐러리맨이다. 그리고 상관의 명령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의 원인이 자기 자신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바보다. 보고 있다보면 "이쯤 됐으면 좀 알아차려봐라!"라고 소리치게 된다. 하지만 진짜로 멍청한 것은 정치인들이다. 애초에 전쟁 병기 개발을 하지 않으면 되는거 아닌가. 결국은 자신들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얘기가 감독으로부터 들려왔다.

3. 대포의 도시
말 그대로 대포로 이루어진 도시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오직 전쟁을 위해서 일하고 공부한다. 그들의 얼굴은 말라 비틀어졌고 다들 잿빛 얼굴을 하고 있다. 모든 자원은 포탄 생산과 화약 생산을 위해 투자되는지 먹을 것도 넉넉치 않다. 승리를 위해서 대포를 쏘지만 실제로 뭐가 맞는지는 뿌연 대포 연기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매일 뉴스에 나오는 보고는 "우리가 올린 혁혁한 전과는..."으로, 아주 멋들어지게 보고된다. 사람들은 이걸 믿고 "우리가 이기고 있구나!"라는 희망을 갖지만, 실제로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부분에, 소년이 아버지에게 "아빠, 도대체 아빠들은 어디하고 전쟁하고 있어?"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 질문에 아버지는 "그건 어른이 되면 알 수 있단다"라는, 형식적인 대답만을 해 준다. 글쎄? 과연 우리들은 어디와 싸우고, 어디하고 전쟁하는 걸까?
마치 소설 "1984"에 나오는 세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20분짜리의 짧은 작품이지만, 기가막히게 그 주제가 잘 드러난다.
세 작품중에 가장 재미있게 감상한 작품이다. 부시에게 보여주고 싶다. 넌 누구랑 싸우고 있는거냐. 대체.


by snowall 2006. 12. 25.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