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해소할 방법은 없고, 다만 내가 마음을 비우는 것 뿐이구나.

마음 속으로 아무리 욕하고 토해놓더라도 쌓여있으면 내 속이 썩을 뿐이구나.

지옥의 밑바닥에서 조금 더 바닥으로 내려가기 위해 삽질을 하는 느낌이랄까.
(이게 투정부리는 건지는 알지만, 난 어디다 투정부릴 사람도 없으니까 여기다가 쏟아둔다.)

기다리고, 참고, 넘기는건 내가 가장 잘 하는 일 중의 하나지만, 아직 감정변화가 없을만큼 완벽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새 한마리가 새가 갖혀있는 새장을 물고 날아가고 있으면, 새장 안에 들어가 있는 새는 날아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까? 날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날지 않는 것도 아니여...그건.

업무 지시가 야근인데, 수당은 없다. 적당히 분위기 보다가 퇴근해야 한다.
(야근을 해야하는 이유는 분위기상 해야 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근데 사무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보통은 늦게 끝나기 때문에, 저녁때 7시든 8시든 9시든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럼 내가 언제 퇴근하든지간에 이 사람들보다 먼저 퇴근하면 야근은 하나마나인 것이고, 그럼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얼굴 보고 가야 한다는 얘긴데 그건 그것대로 기약이 없다.

화가 나는 이유는, 수당도 없고 이유도 없고 기약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동네 돌아가는 사정은 잘 알고 있고, 내가 왜 그렇게 분위기를 맞춰서 일해야 하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게 일하는 거고, 그게 프로페셔널인것도 잘 알고 있다. 남들이랑 같이 어울려서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걸 몰라서 화가 나는게 아니라, 야근을 해봐야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기분 좋은 사무실"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분좋은 사무실이 되어서 이곳 사람들과 친해지면 나에게 일어날 일은 수많은 술자리로의 초대가 발생한다. 내가 술자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마셔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풀리지도 않고, 술을 마신다고 몸의 피로가 풀리지도 않으며,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알콜을 마셔서 내 간장에서 분해할 뿐인데, 술을 마실 때 들어가는 돈이 너무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자꾸만 머리가 나빠지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다. 공부를 계속 하지 못하면 머리가 나빠진다. 794일 후에는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만, 과연 그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내성이 남아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불안함이 내 마음을 뒤덮으면서 우울함이 따라왔다.

아침부터 쭉 생각해 본 건데, 우리나라 이공계에는 미래가 없다. 정확히 말해서, 이공계 종사자들의 미래가 없다. 아마 20년쯤 뒤에는 우리가 그렇게 베껴간다고 욕하는 중국의 기술을 베껴와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 수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가 원하지 않는걸 하면서 돈을 벌 자신은 있다. 돈을 많이 벌 자신도 있다.)
by snowall 2009. 10. 23.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