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데 경쟁과 투쟁과 싸움은 항상 있는 일이다.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난 학교 옆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수도 요금이 나왔다고 해서 돈을 내러 갔다.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과는 달리 수도요금은 주인집에만 계량기가 달려있고 각 자취방에서 쓰는 물값이 전부 일괄적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누가 얼마나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람 수 대로 n등분해서 내게 되고, 이 방법이 대체로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난달까지는 내가 친구랑 같이 살았고 이번달부터는 혼자 산다는 점이다. 지난달 요금은 2인분을 내는게 맞고 이번달부터 1인분을 내는게 맞긴 한데, 주인집 할머니는 우리집을 1인분으로 쳐서 n등분을 했다(약 8천원). 그러더니 2인분을 내라면서 8천원을 더 받아갔다. 나야 수학도 전공했으니 n분의 2가 아니라 n+1분의 2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지만, 귀찮아서 일단 냈다. 물론 앞으로도 그거 갖고 따질 생각은 없다.

자, 그럼 이제 내가 얼마나 더 냈는지 따져보도록 하자.
우리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몇명인지 모르므로 그냥 n명이라고 가정하자. 난 n등분된 돈을 2인분을 냈으니 n분의 2를 낸 것이고, 원래는 n+1분의 2를 내야 한다. 즉, 난 원래 낼 돈의 n분의 n+1을 더 낸 것이다. 약분하면 1과 n분의 1이다. 즉, 내가 낸 돈을 a원이라고 한다면, 내가 낸 돈 a원은 원래 낼 돈을 n등분한 것 중의 하나 만큼 더 낸 셈이 된다. 따라서 내가 원래 내야 할 돈은 a원의 n+1분의 n이다.

아무튼 이런 수도요금 체계를 가진 상황에서 각 자취방 사람들의 생각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건 자취방이 2명있고, 수도요금을 딱 절반씩 나눠내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도 일반성을 잃지 않는다.

예를들어 수도요금이 10000원이 나왔다면 나는 5000원을 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저쪽이 실제로 5천원어치 이상을 썼는데 저쪽은 5천원만 내고 내가 나머지 부분을 낸다면, 이건 억울한 일 아닌가? 확실히 억울하지? 그럼 내가 억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정답 : 저쪽보다 많이 쓰면 된다.

문제는 이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쪽이라고 해서 머리가 딱히 나쁠 이유도 없고,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경쟁이 시작된다. 서로 상대방보다 더 많이 써야만 내가 사용한 요금을 상대방이 내 주는 폭이 커지기 때문에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수도 요금은 한도없이 많이 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서로가 이것을 미리 생각하고, 서로 협력해서 어느정도 이상을 쓰지 않기로 자제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까? 한달에 한번도 마주치기 힘든 옆집 사람을 믿는다는건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드문 일이다. (물론 이런 현실이 안타깝긴 하다.)

이 상황은 곧장 죄수의 딜레마로 연결된다. 서로 협력하면 둘 다 같은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배신하면 배신을 한 쪽은 큰 이익을 얻고 배신 당한쪽은 손해를 본다. 그리고 둘 다 배신하면 둘 다 손해를 본다. 선택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둘 다 배신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죄수의 딜레마의 변형된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죄수의 딜레마"라는 책을 참고하여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물론 내 맘대로 각색하였다.

둘이서 수도요금을 나눠 내는데, 더 많이 쓴 사람이 전액을 부담한다면? 이 경우는 서로 수도를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는 아무도 물을 사용하지 않는 건조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반대로 더 적게 쓴 사람이 전액을 부담하는 경우는 내가 처음에 얘기했던 예의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앞서와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규칙을 바꿔보자. 둘이서 수도 요금을 내야 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별로 친하지도 않으며 서로 의견 교환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데 고지서가 두 자취방의 공통 대문 앞에 꽂혀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감일까지 요금 전액을 낸다면 연체료는 없다. 하지만 아무도 내지 않으면 다음달에 연체료가 가산되어 청구될 뿐만 아니라 계속 안내면 수도가 끊긴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을 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딜레마는 "겁장이의 딜레마"의 변형인데, 가장 좋은 것은 둘 다 "동시에" 대문 앞에서 만나서 반반씩 내는 것이다. 그 다음은 어느 한쪽이 확 내버리는 거고, 가장 나쁜경우는 둘 다 안내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있다.
수도요금 중에서 자신이 몇%를 낼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 얼마나 썼는지는 모르고 요금의 총액만 알고 있다. 즉, 1호실 사람과 2호실 사람이 있으면, 1호실 사람이 "난 10%를 낼 수 있어"라고 선언하고 2호실 사람이 "난 14%를 낼 수 있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선언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 각자 10%와 14%를 일단 낸다. 남은 돈에 대해서 다시 이 일을 반복해서, 낸 돈의 합이 수도요금 총액이 되면 그만 둔다. 이런 경우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까? 아마 50%씩 내는게 최종 결과일것 같긴 한데, 난 게임 이론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정답을 아는 분께 댓글좀 부탁드린다. 이건 "달러 경매"의 변형된 버전이다.

아무튼, 죄수의 딜레마의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들은 실생활에서 이런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수도 요금은 서로 사용한 만큼 내는게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by snowall 2006. 8. 27.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