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어쩌면 대칭성에 관한 학문일 수도 있는데, 수학을 공부하다보면 여러가지 흥미로운 대상을 찾을 수 있다. 그중 이해하기 가장 쉬운 대상은 점과 직선이다. 점과 직선에 대해서 다루는 수학의 분야가 바로 기하학이다. 기하학에서는 아무튼 점과 직선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지 얘기해준다. 그래봐야 "점이 있다" "점 두개사이에 직선을 그을 수 있다" 등등의 이야기로 시작하겠지만. 어쨌든, 이런 점과 직선의 공간은 보통 숫자를 이용해서 표시한다. 하지만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점에는 한계가 있는데, 무한대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점과 그런 직선을 다루는 기하학이 있다.
보통의 기하학적 공간 + "여기서부터 무한히 먼 곳에 존재하는 점"과 "여기서부터 무한히 먼 곳에 존재하는 직선"이 있는 공간을 다루는 기하학이 바로 사영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이다.

사영기하학 자체를 여기서 전부 설명하기엔 힘드니까 각자 교과서를 찾아보도록 하고, 몇가지 재밌는 것들만 이야기 해 보겠다. 일단 사영기하학의 "공간"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성립하는 모든 특징이 다 성립한다. 당연하겠다. 다 똑같고 무한히 먼 곳에 직선과 점을 추가했을 뿐이니까 당연히 성립할 것이다. 여기에 더 재밌는 것은 "쌍대성(Duality)"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쌍대성이란, A와 B라는 대상이 있을 때, 만약 A에 대해서 어떤 정리가 성립한다면 B에 대해서도 똑같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사영기하학의 쌍대성은 점과 직선 사이에 존재한다. "만약 어떤 정리(Theorem)가 점에 대해서 성립한다면, 그 정리는 직선에 대해서도 성립한다."는 정리가 증명되어 있다. 이건 쌍대성 정리라고 하는데, 사영기하학에서 매우 중요한 정리이다. 왜냐하면, 점에 대해서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직선에 대한 문제로 바꿔서 풀어도 괜찮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맘대로 점과 직선을 바꾸면 안된다.

2차원 공간에서 원점 (0,0)을 지나가는 임의의 직선의 방정식을 써 보자.
Ax + By = 0
여기서, "직선"은 위의 공식으로 표현되는 대상 그 전체이다. (x, y)는 변수이며, 아무 값이 들어가더라도 저 공식만 만족시킨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A와 B는 직선을 결정하는 수이다. A나 B가 변한다면 직선도 변한다. 특정한 A와 B에 대해서 언제나 직선이 1개 결정된다. 그 반대로도, 직선 1개를 생각하면 그 직선에 해당하는 A와 B의 쌍이 정확히 1개 존재한다. 따라서 우린 직선 대신에 A와 B를 그 직선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A와 B는 실제로는 그냥 수니까 합쳐서 (A, B)라고 써도 된다. 그리고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점이랑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 직선 Ax+By=0 대신에 점(A, B)라고 해놓고 여러가지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그게 쌍대성이다. (여기서 쌍대성의 정리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쌍대성의 의미를 이해하고 넘어가자. Ax+By=0이라는 공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공식을 만족하는 직선 (x,y)는 원점에서 점 (A, B)를 잇는 직선과 수직으로 만난다는 점이다. 만약, 반대로 (x, y)를 고정시켜놓고 (A, B)를 바꾸더라도 마찬가지 관계가 성립한다. 우린 점을 (x, y)로 정의하고 직선을 (A, B)로 정의했지만, 실제로는 점과 직선의 역할을 바꾸더라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흔히 말하는 벡터 공간을 생각해 보자. 벡터 공간이란 그 안에 있는 원소들에 대한 덧셈과 길이 변환이 잘 정의된 공간이다. 점들의 공간을 벡터 공간으로 정할 수 있는데, 가령 (a, b) + (c, d) = (a+b, c+d)와 같이 덧셈을 정의하고 k(a,b) = (ka, kb)와 같이 길이 변환을 정의한다면 점들의 공간은 벡터 공간이 된다. (다르게 정의해도 조건만 만족한다면 상관 없다.)

벡터 공간에서도 벡터 공간의 쌍대 벡터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어떤 벡터 공간의 쌍대 벡터 공간이란 다시 벡터 공간인데, 원래의 벡터 공간과 같은 성질을 갖는 공간이다.

우선 선형 범함수(linear functional)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범함수(functional)란, 벡터 하나를 주면 그에 대해서 수 하나를 내놓는 함수이다. 가령 벡터 (a, b)에 대해서 f(a, b) = a+b 라고 주는 것 또한 범함수에 속한다.
그중에서 선형 범함수는 선형 관계가 성립하는 범함수이다. 즉, 범함수 f가 두 벡터 v, w에 대해서 f(v+w) = f(v)+f(w)이고 실수 k에 대해서 f(kv) = kf(v)가 성립하는, 그런 참 괜찮게 생긴 애들이다.

그런데 범함수들 역시 벡터 공간이 된다. 가령, 두개의 범함수 f, g가 있다고 하면 (f+g)(v) = f(v) + g(v)라고 쓸 수 있고, (kf)(v) = k(f(v))가 되므로 덧셈과 길이 변환이 잘 정의된다.

어떤 벡터 공간에 대해서, 그 벡터 공간에 주어진 선형 범함수들의 공간은 그 벡터 공간의 쌍대 벡터 공간이 된다. 일단 선형 범함수들의 공간이 벡터 공간이 된다는 사실은 쉽게 알았는데, "쌍대성"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간단히, 쌍대 벡터 공간이라고 해 놓고서 그 쌍대 벡터 공간의 쌍대 벡터 공간이 원래의 벡터 공간이 된다는 것을 알아보자. 뭐, 간단하다. f라는 범함수 대해서 v라는 함수는 v(f) == f(v)로 정의하면 된다(!)

그럼 앞에서 했던 얘기들을 그대로 다 할 수 있다. (v+w)(f) = f(v+w) = f(v) + f(w) = v(f) + w(f)라든가.

이런 쌍대성의 경우에는, 앞에서 했던 점-직선 사이의 대칭성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즉, 만약 v를 점으로 생각한다면 f는 직선이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물리학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입자-파동 이중성의 원리에 등장하는 불확정성 원리이다. 불확정성 원리에서는 쌍대 관계에 있는 값은 동시에 둘 다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고 한다. 운동량과 위치는 쌍대 관계이기 때문에 둘 다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잘 생각해보면, "위치"는 점에 해당하고 "운동량"은 직선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생각해도 된다. 운동량이 점이고 위치가 직선이라도 별 문제는 없다. 왜냐면? 쌍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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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Kwak and Hong 책을 보니까 쌍대 공간은 선형 변환의 Transpose의 일반화된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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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all 2010. 9. 7.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