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물리학과 지망생이 댓글로 문의해서 이메일로 답변을 해준 적이 있다. 적당히 편집해서 올린다. 나에게 문의한 그 학생이 "나만 알아야 하는데!"하면서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조언을 들었다고 해서 다 합격할 수 있다면, 내 적성은 과학자가 아니라 입시 브로커겠지...


물리학을 전공한다고 하니, 일단 걱정이 앞서는건 물리를 좋아하는 것과 물리를 잘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는 거예요. 물론 좋아하는만큼 잘할 수 있지만, 아주 많은 후배들이, 본인은 고등학교 때 물리를 잘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하고서 물리학과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수업을 듣고 잘 하는 사람은 한 학년에 한명? 정도라는 것이죠. 물론 이건 제가 교수님께 전해들은 것들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거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어차피 인성 관련 면접은 다른데서도 많이 알려줄 것이고, 잘 할거라 생각해요. 전공 면접만 몇가지 알려줄게요.
대체로 물리학과 교수님들은 Brilliant한 학생을 좋아해요. 우리말로 하면 "똘똘하다" 정도 되겠네요. 이건 genius나 smart와는 조금 달라요. 단지 계산이 빠르고, 암기가 좋고, 그런것도 아니고, 대학 물리학 과정을 선행하는 것도 아니예요. 다시 말해서, 물리적 감각이 있는? 정도로 생각해야겠네요.
예를 들어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 그냥 별 생각없이 대답한 것이 거의 정답인 것들이죠.
빈 공간에 망치가 하나 떠 있어요. 이 망치의 어디를 밀면 망치가 회전하지 않고 평행이동할까요?
빈 공간에 도체 구가 하나 있어요. 여기에 +전하를 가까이 가져가면 이 도체 구는 힘을 받을까요 안받을까요? 받으면 어느쪽일까요?
면접에서 전공 관련된 질문들은 절대로 어렵지 않아요.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보면 당황하고, 결국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끝나겠죠. 하지만 결코 쫄 필요 없어요. 물리적으로 상황을 따져가는 방법을 알면 어떤 질문에도 자신의 생각을 어느정도는 이야기하고 나올 수 있어요.
추천도서로는 "생각하는 물리(=재미있는 물리여행), 폴 휴이트, 루이스 앱스타인"와 "물리가 나를 미치게 해", "현대물리가 나를 미치게 해" 같은 책을 추천할게요. 본인이 진짜 천재라면 "하늘을 나는 물리의 서커스"라는 책도 있지만, 진짜 천재가 아니라면 함부로 읽지 않는게 좋아요. (들춰보는건 적극 추천.) 교수님들 앞에서 조금 더 아는척을 하고 싶다면 "신화, 마술, 미스테리 속에 물리가 있다"라는 책이나 "알기 쉬운 생활속의 물리"같은 책도 들춰봐요. 물리학과 교양 물리 책이긴 한데, 초끈이론 다룬 책들보다는 더 많이 도움이 될거예요.
앞에 세 권은 아직 고3이 아니라면 반드시 읽기를 추천할게요. 이번에 수능을 보고 바로 면접을 봐야 한다면, 생각하는 물리나 물리가 나를 미치게 해 중에 한권 정도는 읽고 생각해 보는게 좋을거예요.
교수님들에게 줘야 하는 인상은 "물리를 잘한다"보다는 "물리에 소질이 있다"는 거예요. 열정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중요하면서 간과하기 쉬운건 소질(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단순히 공식을 많이 알고, 엘러건트 유니버스나 초공간 같은 책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그런거 말고, 이녀석은 정말 한번 키워보고 싶다. 어디까지 갈지 가르쳐 보고 싶다. 교수님들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런 학생이 되어야 해요. 슈퍼스타K같은거 보면 그렇잖아요. 실력과 발전가능성 모두를 보는 거죠. 특히 발전가능성이예요.
어차피 고등학교때 물리를 잘해봐야, 송유근 정도의 실력이 아닌 이상 교수님이 보기엔 전부 다 꼬꼬마 아가들밖에 안되거든요.
앞에 추천한 책들은 다 문제집인데, 읽고 정답 확인하는 수준으로 끝나면 안되고, 답이 어떻게 될 것인지 최대한 생각해보는게 좋아요. 그걸 생각하는 과정이 물리 연구거든요.
물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럼 어떻게 되는데?"예요. 앞에 나온 망치나 도체구 문제도 있고, 예를 들어 자기장 속에 전선이 있어요. 전선에 전류가 흐르면 어떻게 될까요? 전선은 어디로 갈까요? 왜 그렇게 될까요? 교수님들은 이런 문제를 주고서 말끔히 대답할때까지 끝까지 압박할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에 나온 내용은 완전히 숙지해두세요.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대충 배우고 대학 과정을 뒤적인 것보다, 고등학교 과정이어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고등학교 과정을 완전히 이해한 다음에 대학 과정을 보는거라면 모를까, 고등학교 과정을 이해 못한 상태에서 대학 물리를 보는건 그냥 ... 솔직히 말해 미친짓이죠.

이게 왜 미친짓이냐면, 면접때 헛소리를 할 수 있거든요.

면접관으로 들어온 교수님은 고등학교때부터 물리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분들이며, 대학을 나와서 대학원 유학도 다녀오셨고, 다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분들이예요. 그것도, 다른 물리학자들과 피와 침을 튀기는 논쟁을 벌이면서 자신의 논리와 이론을 정립한 분들이죠. 즉, 적어도, 누군가 물리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데 헛소리를 하고 있으면 콕 찝어서 너 닥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특히 가장 위험한건 양자역학 부분인데, 고등학생들이 양자역학에 대해서 교양 물리책을 보고 대충 이해한 다음에 면접에 들어와서 헛소리하고 있으면 교수님들은 얘를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고 계시죠. 귀찮으니 대충 갈궈서 내보낼까, 노력은 가상하니 점수를 더 줄까, 헛소리했으니 깎을까. 물론 대학 수준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정확히 이해하고 정확히 설명한다면 아주 좋아요.

무슨 얘긴지 알겠죠?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이든 대학교 수준이든 상관 없어요. 다만, 자신이 말하고 있는 용어와 이론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돼요. 정확히 말할수만 있다면야 대학 수준을 이야기하는게 도움이 되죠. 하지만 그게 안되면, 고등학교 수준에서라도 정확히 제대로 이해하는게 더 중요해요.


그리고 물리학자를 꿈꾸는 물리학과 지망생은 내가 보기엔, 그리 많지 않다.(그러나 물리학과 경쟁률이 낮다는 뜻은 아님.)

by snowall 2012.11.27 23:43
  • 음.. 2012.11.28 02:02 ADDR EDIT/DEL REPLY

    요즘은 중앙대 물리학과에서 저런 면접도 보나요?
    내가 거기 들어갈 때는 아예 면접을 안 보고 들어가서리..
    내가 학부생일 때는 학점 잘 맞는 학생은 한 학년에 몇명은 되던데...
    물론 나는 그 중 한 명은 아니었지만...(하하하)

    • snowall 2012.11.28 09:22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선배님이신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
      제가 이야기한건 좀 과장된 내용이고, 실력있는 후배들도 많이 있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면접은 요새 다들 "전공적성면접"같은 형식으로 해서 학과 전공에 관련된 내용을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 하루 2012.11.28 18:26 ADDR EDIT/DEL REPLY

    얼마나 '정확히' ,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이게 포커스네요..

  • 푸리에 2012.12.01 10:21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예전에 다른 글에 댓글을 올렸던 학생입니다..물리학 때문에 고민하고, 일반물리를 복습하려는 대학생에게도 위의 책들은 도움이 되겠죠?

    • snowall 2012.11.30 22:33 신고 EDIT/DEL

      대학 근처에 있는 인쇄소에서 다 해줍니다. 학위논문때문에 대학 근처에는 반드시 인쇄소가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지금 다니고 계신 대학이 어딘지 모르겠으나,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착한곳 나쁜곳 이상한곳 모두 알려줄거예요. 물론 정식으로 구하지 않은 PDF파일을 제본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정식으로 구입한 PDF파일을 인쇄해서 제본하여 혼자만 보는 것만 합법입니다.)

    • snowall 2012.11.30 22:33 신고 EDIT/DEL

      위에 추천도서는 일반물리 수준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 2012.12.15 11:02 ADDR EDIT/DEL REPLY

    죄송한데요
    만약 양자역학 또는 초끈이론 예기를 했다면
    어떻게 요리를 할까요? ㅋㅋ

    • snowall 2012.12.15 13:14 신고 EDIT/DEL

      EPR 역설과 벨 부등식에 관하여 물어보거나, 11차원 AdS공간에 존재하는 끈의 진동 모드들이 어떻게 4차원 입자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물어보겠죠. 여기에 제대로 대답하면 그건 수험생이 아니라 전공자입니다. EPR이나 벨이 누군지 모르거나, AdS공간이 뭔지 모르면, 이제 그때부터 신나게 까이는 거죠.

  • inseed 2012.12.16 00:16 ADDR EDIT/DEL REPLY

    주로 물리학과를 졸업해서 무슨 일을 하나요? 전망은 어떠한가요?

    생업에 종사하면서 학자로서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나요?

    • snowall 2012.12.16 00:23 신고 EDIT/DEL

      물리학과 졸업해서 취직하죠. 뭐든 다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 전공자들의 자존심은 '세상에 물리보다 어려운게 없다'는 정신이니까요. 물론 실제로 그만큼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물리학 전공자들은 물리학 분야보다는 다른 분야에 가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이 많습니다. 쉽거든요...
      특히, 이공계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테크닉에 대한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에, 기계과나 전자과 등 공대 출신과 비교할 때, 최초 시작점은 늦을지 몰라도 공학 전공자보다 가파른 학습곡선을 자랑하며 빠르게 성장합니다.
      전망은, 그래서 '어두위지지 않는 전망'입니다. 다른 분야가 아주 잘 나갈 때 그만큼 잘 나가지는 못하지만, 아무리 경기가 안좋아지고 나빠져도 웬만큼은 해나가는 분야죠. 물리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에게 뭘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콕 찝어서 대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거나 시켜도 웬만큼 잘 합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학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생업이 학자인 경우는 빼야겠죠? 연구직종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 부업으로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업으로 연구하면서 노벨상 급 논문을 쏟아낸 아인슈타인은 예외.) 그리고 그정도 실력과 관심이 있다면 연구직으로 가서 성공할 수준이므로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일이 드물죠.
      위의 내용은 제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편견에 근거한 주장이므로, 공대 나온 분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 inseed 2012.12.16 00:52 ADDR EDIT/DEL REPLY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여기 블로그도 자주 방문하게 되겠네요

    • snowall 2012.12.16 01:20 신고 EDIT/DEL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많은 댓글 기대할게요~

  • 2013.03.24 21:45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snowall 2013.03.25 01:20 신고 EDIT/DEL

      연락은 드릴 수 있는데, 일단 snowall@kaist.ac.kr로 연락을 먼저 하시죠. ㅎㅎ

  • exceed 2015.01.11 19:45 ADDR EDIT/DEL REPLY

    와 우연히 검색하다 보게 됐는데 정말 좋은 글이네요 감사드려요.

    좀 더 물리학 관련한 걸 수능공부 틈틈히 해보고 싶었는데 추천책들이 많네요 ㅎㅎ

  • exceed 2015.01.13 21:21 ADDR EDIT/DEL REPLY

    저기 바쁘신데 죄송한데요 ㅠㅠ 저기 책들 다 예전꺼라 다 절판이네요 ㅠㅠㅠ 다른 문제 있는 책들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 snowall 2015.01.13 21:48 신고 EDIT/DEL

      아, 저런...
      너무 오랫동안 교양서적을 등한시 했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요.
      일단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이라도 한번 뒤져보세요...
      원서로는 아직 남아있어서 영어가 된다면 원서를 사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만...
      당장은 추천할만한 다른 책이 떠오르지를 않네요.

    • exceed 2015.01.13 23:09 EDIT/DEL

      아 원서가 있군요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