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고 있는 책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이랑 움베르토 에코의 "칸트와 오리너구리"이다. 지독하게 안읽히는 책들인데, 아무튼 나름 재밌기에 읽고 있다. 벽초 선생은 이미 작고하셨고(1968) 움베르토 에코는 나이가 아주 많은 분이다. (1932년생) 이런 분들의 책을 읽다보면, 아주 오래전에 작가가 말해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분들은 반대로 미래 세대인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이 있어, 내가 글을 남긴다면 그것이 작가의 귀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난 무언가 대답을 한 것이고 그건 이제 하나의 대화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지금 모르겠다면, 미래에 물어보자.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잘 설명하고, 마지막에 궁금한 것이 무엇인가 밝혀둔다면 미래에 어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서 거기에 대답해 주지 않을까? 비록 그 대답을 내가 들을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대답이 갈 것이니 그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실 책이라는 것은 집단 지성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새로운 책은 항상 작가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은 작가가 그간 경험한 과거 지식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진 작가의 새로운 의견이 있으니, 책이 출판되고 그것이 쌓여갈수록 인류의 지식도 늘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낸 듯 하지만, 오래된 작가나 너무 멀리 있는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궁금한 것이 있어도 작가에게 물어볼 수가 없으니 나는 작가가 남기고 간 작품을 해석해서 작가의 뜻을 알 수밖에 없고, 그 나름대로의 대답을 적어둔 것은 또한 누군가 읽고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을테니 독서와 독후감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미래에 질문을 던져라. 아니면 미래에 나올 질문에 대해 대답부터 하거나.[각주:1]
  1. 슈뢰딩거인가, 누가 그랬더라, "우리는 이제 답은 알았다. 남은 것은 옳은 질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라고. 더불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닥치고 정답이 42라고 알려준다. 질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답은 42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질문하기 전에 답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질문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그리고 의미있는 지적 활동이 될 것 같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07. 7. 8. 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