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에 나오는 도의 작용을 보면, 언제나 도는 저절로 그러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이룬다고 한다. 물리학적인 관점에서는 이 말을 환원주의(reductionism)와 전일주의(holism)로 바꿔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환원주의는 모든 것을 더 작은 일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이며, 전체는 부분의 합이라는 관점이다. 전일주의는 일부분만 관찰해서는 전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없고,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관점이다. 다시 말해서,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의 관계가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분을 분석해서는 전체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각각의 부분들을 더 자세히 분석해 나가는 것을 상위단계라 하고, 부분을 합쳐서 전체를 만드는 것을 하위단계라고 하자. 상위단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작용은 하위단계에 영향을 주지만, 하위단계는 마치 상위단계와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원자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는 중성자와 양성자와 전자이고, 중성자와 양성자는 쿼크와 글루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쿼크와 글루온이 어떤 작용을 하느냐가 핵자의 성질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굳이 쿼크와 글루온을 상정하지 않더라도 핵자를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핵자의 성질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전자와 핵으로 이루어진 원자가 갖는 특성은 대부분 설명 가능하다. 원자의 특성을 다 모르더라도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의 특성을 기술할 수 있고, 원자의 특성을 다 안다해도 분자의 특성을 기술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가 된다. 분자를 모아서 생명체를 이루는 단백질이 되고, 단백질이 모여서 세포 소기관이 된다. 이들은 세포를 이루고, 개체를 이루고, 사회를 이룬다. 각각의 층위에서 바로 윗 단계는 어느정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단계가 멀어질 수록 모르더라도 별 영향이 없다.


각각의 단계에서, 그 단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들은 상위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고, 하위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전자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갈 때, 그 사이에 수많은 진공 거품들을 마주치며 지나간다는 것은 고에너지 입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전적으로는 그 많은 충돌들의 평균을 따르는 경로로 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하여 문제를 풀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 이것은 그나마 바로 맞붙은 단계 사이의 관계이지만, 진공 거품에 의한 효과는 단계를 내려갈수록 더 작아져서 분자 수준만 하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고 세포 단위나 개체 수준에서는 몰라도 된다. 자기 몸을 구성하는 원자나 전자들이 어째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신경쓰면서 사는 생명체가 있을까? 그것이 바로 '저절로 그러함'이다.


물리학에서는 각 부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규명하고(free particle Hamiltonian), 각 부분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규명하고(Interaction Hamiltonian), 각 부분이 아주 많아졌을 때 하위단계에서 어떤 특징들을 남기고 가는지 규명하고(Statistical physics), 더 상위단계의 물리학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관계 없이 하위 단계를 기술할 수 있다.(Phenomenology) 입자물리, 플라즈마물리, 핵물리, 원자물리까지 공부해보니 '저절로 그러함'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by snowall 2014. 2. 1.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