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진로상담인가 아닌가...

본인 소개를 지방대 물리학과 여학생이라고 하였는데, 합격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얘기할게요. 일단 지방대라는 점, 여자라는 점, 물리학과라는 점이 다 불리하네요.

일단, 지방대라서 생기는 문제는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생기는데요. 학습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만약 주변 친구들이 공부를 안하는 것 같아보이면 위험해요. 본격적인 공부가 이제 시작인데 대학교 들어가면 다들 놀겠죠. 그러다가 4년이 지나면 실력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냥 대졸 백수가 됩니다. 어느정도 적당히 대학생활을 즐기고 술도 좀 마시고 그러는 건 괜찮지만, 누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놀지는 마세요. 기준을 주변 친구 수준에 맞추지 말고 명문대 수준에 맞추세요.

명문대에 가면 인생이 성공할 것 같죠? 거기 다니는 친구들은 더 혹독하게 공부해요. 그 친구들이 그나마 공부하는게 습관이 잡혀있고 그러니까 버티는 거예요. 수능이나 내신이 안좋아서 지방대를 가는건 괜찮지만, 그랬다고 해서 공부를 못하는 거나 실력이 없는게 변명이 되지는 않아요. 회사에서 사람 뽑는 거 보면, 학벌은 물론 봐요. 그런데 실력이 없으면 학벌이 변명이 안되겠죠? 적어도 학벌 때문이라는 말은 못하겠죠. 명문대 다니는 학생들만큼 공부하면 그정도 실력이 됩니다. 주변 영향을 많이 받겠지만, 이걸 얼마나 버티고 공부를 해 내느냐는 자기 노력이죠.

나중에 졸업하고 취업을 할 시점이 되면, 4년 후에는 학벌주의가 많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네요. 단적으로 말해서,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건 굉장히 힘들어요. 인맥이 없으면 힘들죠. 어떻게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무시합니다. 요새는 취업 자체가 힘든 세상이기도 하고요. 이런걸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 모든걸 개인이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어렵네요. 인생 선배로서,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어떤 어려움이 올지 모르지만, 독하게 버텨야죠 뭐. 살다보면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도 많고, '내가 여기서 왜 이짓을 하고 있지' 하는 순간도 자주 찾아옵니다. 회사 다니다보면 상식이 없는 인간도 많고, 사람처럼 돌아다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도 만나고, 참 그래요. 그리고 꼭 그런 애들이 실력도 없으면서 자기 출신 대학을 거들먹 거리며 사람 무시하죠. 이걸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고, 살아남아서 출세하는 사람들은 정말 지독한 사람들입니다. 이게 힘들어서 못 견디고 쓰러진 사람들한테 '넌 왜 못하냐?'라고 쉽게 얘기하기엔 정말 험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살지 말고, 마음 편하게 살아라, 적당히 너 먹고 살 돈만 벌면서 살아라, 라고 하자니, 요새는 그것조차도 힘든 세상이 되어가네요.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몸이 힘든 것과 마음이 힘든 것을 분리하고, 몸이 힘들다고 해서 마음까지 힘들어지지는 않으며, 마음이 힘든 일들을 쿨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해요.

음... 근데 실제로 학벌때문에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를 당해보면 위에 제가 쓴 얘기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마음이 아파요. 근데 어쩌겠습니까. ... 세상이 그런걸.

물리학과를 나온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공대에 비해서 왠지 모르게 밀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단적으로 말해서 공대 출신이 취업이 잘 돼요. 물리학과는 그보다는 조금 밀릴거예요. 하지만 장점이라면, 기계과 뽑는데나 전자과 뽑는데는 그쪽 전공자만 지원할 수 있지만 물리학과는 둘 다 지원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공계열이 아닌 다른 계열 회사에도 지원할 수 있고요. 어쨌든 실력이 있으면, 학과 자체로는 크게 전망이 나쁘지는 않아요.

여자라서 생기는 문제점은 그냥 우리 사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데요.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유리천장이라는게 실제로 있어요. 또, 그걸 뚫어라, 말아라, 이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 어떻게 하라고 권할 수 없지만 그런게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도 회사마다, 조직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 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학벌 문제랑 마찬가지로, 이것도 직접 당해보면 각오한 것보다, 버틸 수 있다고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기분이 더럽기 때문에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아요. 그런게 없는 조직으로 잘 피해 다니는게 좋지만, 들어가서 체험하기 전에는 어떤 조직인지 알 수가 없으니 어려운 일이죠. 또, 취업이나 진로라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냥 뽑히는 대로, 흐르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거든요.

다행 히, 요새는 양성평등 정책 덕분에 직장 내의 남녀비율을 맞춰야 하는 곳도 있고, 대체로 남자가 더 많으므로 여성 지원자에 가산점을 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요. 최근에 제 친구가(남자) 이것때문에 최종면접까지 가서 떨어졌네요. (...) 앞으로 점점 개선될 거라는 기대를 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여자라서' 안 뽑는 곳도 많습니다. 여자랑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거나, 여자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조직이죠. 이런데는 가도 힘들고, 안가기도 힘들고 그런데요. 이것도 지원해 보기 전에, 가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부분이라서요.

대충 이정도가 제가 알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입니다. 암울하게 얘기했지만, 또 살다보면 괜찮은 부분도 많고 그래요.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어떤 진로로 갈지 모르겠지만, 결국 인생은 자기 인생이라. 대학 다니다보면 길이 보이고, 공부하고 많이 고민하다보면 또 깨닫는 것도 있을 거예요. 현실을 아는 건 아는거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자신의 선택이니 최선을 다해서 선택을 해 보세요. 물론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거예요. 그러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나름 열심히, 솔직하게 적었지만, 위에 적은 것들이 전부 진실이거나 사실을 반영하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조언을 구하고, 상담을 받으세요. 그리고 선택은 셀프입니다. 성공했다면 모를까, 망했을 경우에, 누구 말을 듣던지, 누가 이렇게저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는 변명은 사회에서 안 통해요. 그 조언을 해준 그 누구 씨는 '너가 그렇게 망할줄 몰랐지'라면서 발뺌할겁니다. 당연히 저도 그렇고요. 그러므로 많이 생각하고, 많이 대화하고, 많이 경험한 후, 자기 앞 길은 직접 고르세요.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가져가고 싶다면 실패도 자신이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운명이지만 행복과 좌절은 선택입니다.

그나저나,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결국 나 자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남들에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by snowall 2014. 12. 12.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