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를 주제로 한 세번째 글이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수능 시험은 대단히 쉬운 시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매년 문제를 새로 만들어서 내고 있으며, 매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흔치 않은 유형의 시험이라고 본다. 어째서 매년 난이도 조절이 실패하는 걸까? 문제 내는 선생님들이 바보일까? "이정도는 풀겠지?"라고 생각한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걸까? 짧게는 고3의 1년을, 길게는 초등학교 입학부터의 12년을 "명문 대학"이라고 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만을 해 온 애들이 전부 바보인가? 아니면 명문대학은 그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천재나 행운아들만이 가는 곳인가? 매년, 대학교 입시 요강이 발표되면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
어쩌라고...


문제의 난이도는 어떻게 하면 적절히 조절될까? 출제위원-수험생 한명 사이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출제위원이 문제를 쉽게 내면 수험생의 점수는 높을 것이고 어렵게 내면 점수는 낮아진다. 출제위원의 고민은 다음과 같다.
"아니, 이걸 내면 애가 너무 점수가 높고, 저걸 내면 점수가 너무 낮아지잖아? 어쩌지?"


반면에, 수험생의 고민은 이렇다.

"공부를 많이 해야만 점수가 나온다"


즉, 출제위원은 점수가 너무 높아도 고민이고 너무 낮아도 고민인 것이다. 예를들어, 100점 만점인 시험에서 자신이 낸 문제를 푼 학생이 50점을 받아야 자신이 낸 문제가 "잘 출제된"문제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50점에서 멀어질수록 괴로워진다. 수험생은 100점에 가까울수록 좋고 멀어지면 괴롭다. 이것은 연속 변수와 관련된 딜레마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분석하기는 곤란하지만, 개념적인 이해를 해볼 수는 있다. 수험생이 0점 근처의 점수를 받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이다. 따라서, 이렇게 되는 일은 모두 막기 위해서 노력한다. 즉, 출제위원이 너무 어려운 문제를 내는 일도 없고 수험생이 너무 공부를 안하는 경우도 없다. 이 협동은 수험생의 점수가 50점을 넘어가는 순간 깨진다. 수험생은 여전히 점수가 높을수록 좋지만 출제위원은 이제 수험생이 점수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문제는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런다고 수험생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험생은 낮아지는 점수를 막기 위해서 더욱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과정이므로 수험생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문제는 어려워지고, 문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수험생은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결국 피터지는 수험 전쟁은 단 한명의 학생이 있어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험생은 한명이 아니라 집단으로 두고, 단 하나의 점수인 50점이 아니라 "표준정규화하지 않아도 표준정규화된 것 같아 보이는 성적분포"를 목표로 한다면 상황이 비슷해진다.


이것을 죄수의 딜레마 문제로 표현하기 위해서, 3명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한명은 출제위원이고, 두명은 수험생이다. 다시한번, 앞서 출제위원-수험생1명의 딜레마와 같은 방법으로 분석해 보자. 두 학생의 평균 점수가 50점에 가까울수록 출제위원은 좋다. 두 수험생은 자신의 점수가 높을수록 좋다. 그다지 교육적이지는 못하지만, 수험생은 서로에게 공부를 하도록 할 수도 있고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석하면 될까?
두 수험생의 점수가 둘 다 50점을 넘지 않는다면 출제위원은 수험생의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수험생들은 굳이 포기하지 않는 한 적당히 공부해서 50점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어느 한쪽이 50점을 넘었다면 어떻게 될까? 출제위원은 평균점수가 50점근처에 있는 한 결코 난이도를 조절하지 않을 것이다. 잘 내고 있는데 뭐하러 괜히 수고스럽게 난이도를 바꾸겠는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두 수험생은 피말리는 경쟁을 하게 된다. 내가 쉽게 점수를 올리려면 난이도가 쉽게 나와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수를 올리게 된다면 난이도는 어려워진다. 그럼 나 역시 피터지게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따라서, 나만 공부하고 저쪽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평균점수는 50점에 가까울 것이므로 난 손쉽게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공부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공부를 못하도록 방해해야한다. 이상한 결론이라고? 당연한 결론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 역시 바보가 아니므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은 내가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쉽더라도 상대방의 방해가 있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는 것은 힘들어진다. 따라서 문제가 쉽건 어렵건 내가 공부하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방해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도 문제다. 그럼 성적이 서로 잘 올라가서 문제가 어려워지므로 공부는 힘들어진다. 반대로, 서로 공부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은 어떨까? 이 경우 최소한 50점까지는 성적이 떨어질 것이므로 각자 손해다. 이때 한쪽이 배신 때리면 다른 한쪽은 작살나는 거다. 따라서 이런 연합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적절한 난이도 수준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과의 경쟁이 심해지게 된다. 심지어 문제가 어렵지 않아도 대학가기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만약,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어렵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는 평균점수가 내려가게 될 것이므로, 서로가 방해하는 시간보다는 공부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물론 공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반대로,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쉽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서로를 방해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공부하기는 상대방의 방해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문제가 쉽게 나오건 어렵게 나오건 대학가기는 힘들고 공부하기는 어려우며 매년 수능 난이도 조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건 100만명의 수험생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균형을 이뤄서 모두가 잘 되는 길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공부를 똑같이 해서 잘 되기로 합의했다면 단 한명이 배신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에 모두가 배신하고 피터지게 공부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수능만을 분석했지만, 수능뿐만이 아니라 수험생들이 경쟁하는 모든 입시 시험에 같은 분석을 적용할 수 있다. 대학가기가 힘들고, 수험생들이 고생하는건 대학교 입시 제도가 자주 바뀌어서도 아니고, 논술 비중이 커져서도 아니며, 학생부 위주의 선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도 아니다. 대학에 가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 수험생들이 피터지게 고생하고, 점점 더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수험생들의 피터지는 경쟁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대학교"로 한정해 버린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이 분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대충 배워서 분석한 사견임을 밝힌다.
by snowall 2006. 9. 24. 0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