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에서 시켜서 전국 영재교육원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은 25개인가 28개인가 되고 각 시, 군 교육청 단위의 영재교육원은 250개인가 된다. 그런 속에서 1년에 수만명의 "영재"라는 애들이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쁜게 없다. 뭐 나도 어릴때 좀 더 난이도 있는 걸 배우고 좌절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으니까.

문제는 열성 학부모들이다. 자기 아이가 영재교육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애가 바보판정을 받은걸로 생각하기라도 하는지 굳이 어딘가의 영재교육원에 넣으려고 한다. 물론 자기 자식이 머리 좋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째지지. 문제는, 아이들은 그냥 자기 나름대로 흥미있는게 있고 관심있는게 있고 좋고 싫은게 있는데, 그걸 부모의 관점에서 재단하려 들면 애 하나 버리는 길이다. 얼마전 인하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송군의 경우도 아이가 좋아하는걸 부모가 좋아하게 놔뒀다. 일부러 더 시킨다기보다는, 알아서 잘 하니까 해보겠다고 도전하는 선에서 지원해준 것이다.
하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하라고 시키는 건 모두 나쁘다. 그리고, 아이는 모든 면에서 만능이 아니다. 어릴때는 못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게 내 지론이다. 어쩌다 특정한 영역에 두각을 나타낸다고 해도, 그게 아이가 좋아하는 걸 수도 있고 싫어하는 걸 수도 있다. 어릴때 말 빨리한다고 언어에 재능이 있고, 숫자 빨리 익혔다고 수학에 재능이 있고, 뉴턴의 운동법칙을 술술 외운다고 해서 과학에 재능이 있는건 아니다. 그럼 난 겔만이게?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인 머레이 겔만은 7개 언어를 모국어처럼 말하고 수학과 과학을 매우 잘한다)

부모로서의 역할은 자식이 혼자서도 밥벌어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키워놓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부모가 늙었을 때 자식이 부모를 버리지 않도록 키우는 것이다. 이정도면 부모 역할은 충분하다. 나머지는 각자, 아이가 가진 꿈과 재능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이가 남들 보기에 바보같아보여도, 그걸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부모가 도와줘야 아이가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장점과 단점은 모두 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어서, 장점이 아무리 좋아도 단점이 치명적이면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성실해도 실수를 자주 한다면 성공하기가 힘들것 아닌가?

영재교육이란 원래 학교 수업이 너무 쉬워서 지겨워하는 애들을 위한 수업이다. 그런 애들은 그냥 빨리 배워서 사회에 나가서 빨리 직장 잡고 일 시키면 된다. 그걸 왜 부러워할까? 그게 부러워서 "학교 수업이 너무 쉬운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과외비와 학원비와 유학비를 부담하면서 그렇게 아이를 고생시키는 걸까? 아이는 너무 빨리 크지도 않고 너무 천천히 크지도 않는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자라지도 않고 모두가 많이 차이나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빨리 크고 조금 늦게 크는 아이는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다 커서는 거의 다 거기서 거기다. 다 자기가 커야할 만큼은 큰다. 그걸 조금 늦게 큰다고 조급해 하면 안되는 일이다.

그렇게 어릴때 죽어라고 수학, 과학 공부하고서 "이제 지겨워!"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결국 수학, 과학을 포기하고 문과로 한다. 하지만 문과는 이미 "인문학의 위기". 그곳엔 길이 없다. 인문학은 위기니까 인문계에서 돈 잘 되는 행정, 법학, 사범대, 경영 등등으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행정고시나 임용고시나 사법고시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순간 수년의 인생을 포기하고 시험공부만 해야 한다. 경영은? 그곳엔, 문과로 와서 두번다시 펼쳐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수학이 당신을 기다린다.
수학, 과학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위의 사정을 아는 아이들은 이공계로 오겠지. 하지만 이공계로 와도 별로 희망은 없다. "이공계의 위기"는 이미 고등학생들을 짓누르고 있다. 더군다나 수학, 과학은 무작정 외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이들은 돈 잘 되는 의대로 자기 진로를 결정한다. 의대로 가지 못한 애들은 공대로 가고, 공대도 못가면 재수를 한다. 물리학과로 와서도 대부분 공대로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 부전공 등으로 아예 그쪽으로 빠지거나, 완전히 다른 일을 하거나 하지 대부분이 물리학에 자신의 직업을 걸지는 않는다. 왜?

부모들은 알아야 한다. 지금 세상은 부모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가치가 바로 최고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모두가 돈을 바라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건 문제가 있다. 100명중에 1등만 살아남고 나머지 99명이 죽는 상황에서, 1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건 바보짓이다. 그 100명의 집단을 빠져나와서 혼자 살아남으면 된다. 왜 모두가 경쟁하는 곳에서 같이 경쟁하고 있는거냐. 버스 터미널의 표파는 곳에서 항상 자기가 서 있는 줄이 가장 늦게 빠진다는 걸 알면서, 왜 자기 자식은 "성공"이라는 곳으로 가는 표를 굳이 "모두가 다 서 있는 가장 긴 줄"의 맨 끝으로 보내려고 하는 거냐. 다른데는 표 안판대? 성공으로 못간대?

생각을 바꿔라. 조급해하지도 말고, 느긋해하지도 마라. 이래뵈도 부모쯤 됐으면 다 큰 어른이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지, 왜 남들이 좋다는대로 다 따라가는걸까? 남들이 좋다는대로 다 따라가는 것 자체가 나쁜일은 아니다. 문제는, "모두가 다" 따라가면 그 "좋다는 곳"에 사람이 몰려들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그 결과 상황이 나빠지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모두가 "하나의 길"로서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모두가 "각자의 길"로서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지금처럼 경쟁이 심각해질 필요도 없고 교육정책이 실패할 이유도 없으며 무능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짤릴 일도 없다. 좀 생각좀 바꿔라! 자기 자식이 남들 안하는 걸 하겠다고 우기면 그냥 하게 놔둬라. 굳이 남들이 몰리는 "성공이 보장되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 길은 남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식이 남들 다 하는걸 굳이 하겠다고 한다면 뭐 그냥 놔둬도 상관 없다.

덧붙임 : 위의 글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되는, 자신의 열정과 진실로서 자기 전공을 선택한 건실한 청년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어느쪽이되었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 괜히 고생하는 사람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그 고생이 괜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by snowall 2006. 10. 3.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