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혼란스럽다보니 이젠 별게 다 낚시질을 한다. 며칠전 대학원 연구실에서 선배들이랑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잠깐 누가 뭐 물어본다고 해서 선배들은 일단 먼저 가고 나만 낚여줬다.

참고로 둘 다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다른 대학에서 왔는데, 저는 미술 전공하고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 네..."
"여쭤볼게 있는데, 바쁘세요?"
"저녁 먹으러 가야 하는데요"
"1분만 시간을 내 주세요"
"에...1분만"
"대학원생이세요?"
"네, 대학원 다니죠"
"그럼 한 20대 후반? 30대 초반?"
"..."
사실 이 시점에서 쌍욕 하면서 면상을 후려 팰까 하다가 참았다. 2006년 현재 내 나이 23살이다. 죽여버릴까?
"23살인데요"
"아, 대학원생이라고 하셔서 착각했습니다"
"..."
사실 이 시점에서 이미 이 사람들은 내게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혹시 우주의 가을에 관해서 들어 보셨나요?"
"..."
그냥 도망 나왔다. 형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사실 그 이전에도 우주의 가을에 관한 이론은 꽤 자세히 들어본적이 있다. 이쪽 사람들은 굳이 날 붙잡으려고 하길래 인도적 측면에서 잡혀준건데, 내 나이를 틀리다니. 가장 중요한거 아냐? 사람 나이도 못 알아볼 정도의 통찰력으로 우주에 가을이 오는지 안오는지 어떻게 알겠다고...쯧쯧.

우주의 가을에 관한 사상을 나는 전혀 믿을 수 없다. 기껏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위와 같은 짓이나 하고 다니니 신빙성이 있을리가 있나. 그것도 그거지만, 우주의 역사는 대략 100억년이고, 아무리 짧게 잡아도 50억년보다는 오래 됐다. 우주의 가을에 관한 이론에서 얘기하는건 수천년 단위이고, 길어야 수만년정도 된다. 뭐, 수십만년이라고 해도 좋다. 겨우 우주 전체 역사의 1%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우주 전체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면 그건 정말 코끼리를 손가락으로 한번 건드려보고서 그의 모든것을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비약이다.


by snowall 2006. 11. 8. 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