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스포일러 있음!!!

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을 즐긴다. 특히, 기술이 발달할 대로 발달한 이후에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하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물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상상을 많이 해보기도 하는데, 그중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두개 있다. 바로 총몽과 공각기동대이다. 두 작품은 모두 미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기술이 극도로 진보하여 인간의 몸체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필요하면 바꿔 끼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두 작품의 세계관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관계는 많이 다르다.

우선, 총몽의 세계관을 보자. 총몽의 세계관에서 "뇌"라고 부르는 물리적 실체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이 동네에서도 뇌의 모든 정보를 반도체 칩에 담아서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정도는 갖고 있다. 하지만, 작품 후반부에 가다 보면 인간들이 자신에게 뇌가 아니라 반도체 칩이 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엄청난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 뇌를 가진 아이들과 수술을 받아서 반도체 칩을 갖게 된 어른들 사이에 잔혹한 살육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뇌"가 그들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뇌"를 갖고 있어야만 진정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갈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갈리의 뇌는 어딘가에서 빼돌려져서 비밀리에 보관중인 것이다. 즉, 본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갈리는 사실 복사된 반도체 칩을 갖고 있는 존재이며, 원래 존재했었던 실체로서의 뇌는 그냥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만약 그 뇌가 깨어나게 된다면, 갈리는 엄청난 정체성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유일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의 정보를 담고 있는 물리적인 실체가 사실은 원본으로부터 복사되어 나온 반도체 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몸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타인으로 인식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이전에도 논의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한명의 사람이지만 물리적으로 두개의 몸을 갖고 있을 수는 없으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는 몸은 단 한개 뿐이라는 본능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갈리가 원래 존재했었던 물리적 실체로서의 뇌의 경험과 반도체 칩에 저장된 경험을 통합하여 모두 자신의 역사로서, 자신의 인생으로서 인지할 수 있다면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공각기동대의 세계에서는 일어난다.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또 하나의 주인공, 타치코마라는 로봇들은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인공지능을 발달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공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들의 경험 데이터이다. 그리고 8대의 타치코마들은 경험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여(병렬화) 각자의 인공지능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단지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그들이 자아를 잃지는 않는다. 스토리가 진행되어 가면서 그들의 인공지능은 거의 인간의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 각각은 개체로서의 자아 또한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또한 묘사되고 있다. 공각기동대를 보면 쿠사나기 소령과 인형사가 융합하는 장면이 있다. 인형사는 네트워크의 방대한 정보들 속에서 태어난, 실체로서의 몸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해커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서 네트워크를 돌아다니게 되는데, 그러다가 결국 쿠사나기 소령과 자아를 융합하게 된다. 이에 대해, 쿠사나기 소령은 융합 직전에 질문한다. "융합 후에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에 대한 인형사의 대답은 "나도 모른다. 다만, 우리 둘이 서로를 인식할 수 없으며, 융합 후에는 너도 나도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개체로서 탄생하는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상상은 굉장히 흥미로운 것들인데, 논리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리적인 기술은 아직 모르니까 그냥 놔두고, 막장 테크놀로지를 한번 상상해 보자.
다음과 같은 과정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있고, 두 사람의 뇌를 적당히 꺼내서 뇌세포들의 연결 관계를 전부 유지한 상태로 단지 뇌세포들 사이의 거리만 벌린다. 인간의 기억은 뇌세포 자체가 아니라 뇌세포들의 연결 상태에 저장된다고 하므로, 아마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인간의 자아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무슨 꿈을 꿀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후, 두개의 뇌를 합쳐버리는 것이다. 이때, 뇌세포들을 연결한 시냅스들은 서로 교차할 수밖에 없는데, 이 교차 과정에서 한번에 1개의 시냅스만 끊었다가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한번애 여러개의 시냅스를 끊으면 헷갈리게 되고, 다시 연결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사라질 수도 있으므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서 시냅스를 1개만 끊고 교차시킨 후 다시 연결시킨다. 이것을 모든 뇌세포에 적용해서 두개의 뇌를 겹쳐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후, 다시 뇌세포들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아마 기억이나 고등 사고작용에 필요 없는 회백질 부분은 많이 버려질 것이다. 어쨌거나, 다시 두개골 안에 들어갈만한 크기로 줄인 후 1개의 몸에 이식한다. 이제 1개의 몸에 들어간 2개의 뇌는, 뇌세포는 전에 없던 뇌세포들이 옆에 생겼으므로 연결을 시도할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 기존에 있던 연결관계는 모두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2개의 인격이 1개의 자아로 합쳐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만들어지게 된 새로운 인격은 합쳐지기 전의 서로를 인식할 수 있을까? 만약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진정으로 자아라는 것은 몸에 귀속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뇌세포들의 연결 상태가 가지는 환상인가? 이렇게 보는 것은 너무 환원주의적인 시각이 강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므로,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다. 합쳐진 후의 뇌는 한사람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까?

총몽에서의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물리적인 실체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따라서, 이곳의 인공지능은 태생적인 인간의 인공지능을 따라가기 힘들다. 물론, 스토리가 진행되면 될수록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공각기동대의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로서의 실체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물이 어디에 담겨져 있든 물은 물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이 담겨있는 그릇이 생물학적인 뇌가 되었든, 반도체 칩이 되었든, 전자 회로가 되었든, 아니면 거대한 기계 장치가 되었든, 그 정보로서의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자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두 애니메이션은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들이다.
by snowall 2008. 6. 2. 2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