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의 영국의 수도승이었던 오캄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이득이 없다면, 일부러 복잡한 설명을 선택하지 마라." 이것은 현대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이다.

최근에, 어떤 블로거와 긴 토론을 하면서, 나 스스로도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많이 하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프랙탈 우주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과 비교할 때 무언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우주가 프랙탈 구조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일반 상대성 이론 역시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동등하다"는 일반 상대성 원리로부터 출발하였다. 만약 그 원리가 진리가 아니라면, 일반 상대성 이론은 틀린 이론이 된다. 하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오차 범위 이내에서 정확히 예측하여 왔다. 예를 들어, 수성의 근일점 이동은 뉴턴의 고전 중력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미세한 차이를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였고, 중력 렌즈 현상과 태양 중력에 의한 별빛의 휘어짐을 설명하였다. 블랙홀의 여러가지 특징도 무사히 설명해 내고 있고, 우주 전체의 진화에 대하여 현재 남아있는 관측적인 근거들을 설명하는 우주 시작에 관한 이론도 일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즉, 일반 상대성 이론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프랙탈 우주론은 그렇지 않다. 프랙탈 우주론은 현재 관찰하고 있는 우주를 해석함에 있어 또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을 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결과를 예측하거나, 일반 상대성 이론이 해석하지 못하는 결과를 해석하지는 못한다. 또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이미 잘 설명된 결과들을 새롭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보인다는 가설에 불과하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믿기 힘든 노릇이다. 이것은 프랙탈 우주론을 믿는 사람들이 증명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대안적인 과학 이론을 내놓는 사람들을 여럿 보아 왔다. 에너지 소모가 없는 공기 엔진을 만들수 있다고 주장하며 열역학 제 2법칙이 틀렸음을 주장하는 사람,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오류임을 주장하며 절대성 중력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 창조론이 올바른 진리이고 진화론은 오류라는 사람, 최근에 있었던 제로존 이론까지. 이러한 이론의 특징은, 다른 주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믿고, 그러한 패러다임에 맞춰서 연구를 수행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은 이미 잘 사용되고 있던 과학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이미 잘 설명되고 있는 현상들 역시 잘 설명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기존의 과학 이론을 포함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열역학 제 2법칙이 틀렸고, 공기 중에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어째서 열역학 제 2법칙이 논리적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른 현상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논리적 오류가 있다면, 그 이론은 현실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것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공기 중에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현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데, 오직 발견되지도 않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존에 다른 곳에서 잘 사용되는 이론적 체계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창조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화론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면, 진화론의 논리적 체계에 위배되는 증거가 발견되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증거와 생물학적 증거들은 진화론의 논리적 체계를 위배하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진화론은 아직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뿐이지, 그 자체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창조론은 앞으로 생명체들이 어떻게 변화하여 나갈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종의 멸종이나 종 분화 등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런 구멍투성이 이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과학이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과학의 발전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더 많은 것을 설명하고, 더 자세히 설명함으로서 이루어진다. 상상력은 중요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아직 보지 못한 일,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고 그런 때에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중요한 지적 활동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들이 우리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이라고 믿고 있는 이 현실의 법칙 체계에서 모순되지는 않는지 등을 따져 보아야 한다. 아니면, 그냥 그건 Scientific Fiction이 될 뿐이다.

덧붙여서, 과학은 보편적 이론 체계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법칙을 실험으로서 재현 가능하거나,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재현되지 않으면 검증할 수도 없고, 따라서 과학 이론으로서 인정받을 수는 없다.
by snowall 2008. 9. 21.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