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학교에 찾아가서 대학원때 지도교수님을 만나뵈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기도 하고, 당연히 앞으로도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를 갖게 된 분이다.

지난 2월달에 난 교수님과 같이 하던 연구주제를 개인적인(말하기 좀 곤란한 일신상의 이유로) 그만 둔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께서 적잖이 많이 실망 하셨나보다.

내가 물리를 그만 둘 것으로 생각하신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물리 교육이 낫지 않겠나 하는 말씀도 하셨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모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으셨다는 점이다. 사실 정서적인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내 선택은 항상 그래왔으니까. 이제 조금씩 나 자신에게 모질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고, 각오를 다지는 중이고, 앞으로를 위해서 희생할 것들을 정리하는 중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독한 놈이 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는 마음이 많이 나약하다. 머리 좋은거 하나만 믿고 아직까지는 버텨 왔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게 봐도 내 주변의 현실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밑천은 거의 다 떨어졌다고 봐도 좋다. 지금부터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많이 하고, 스스로를 많이 용서해 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고, 그렇게 해도 먹고 살만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장래희망은 아직 현실이 아니고, 그걸 현실로 만들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 앞으로 다시 15년간은 있는 힘껏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마저도 15년 중 초반 5년은 장래희망과는 아무 관련 없는 엉뚱한 일을 하면서 버텨야만 한다.

비교적 어릴 때에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되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꿈을 포기하는 것은 아주 쉽고, 지금의 현실에서 남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을 얻어내는 것은 나의 꿈을 이루는 것 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스스로를 일부러 힘들게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선택이 필요할 때 결과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그건 그렇고...

교수님께서 내가 굉장히 돌아서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딱히 늦은 건 아니다. 최적의 경우와 비교해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 늦게 유학을 가게 되는 것이니까, 딱히 늦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29살에 외국 대학원으로 유학갈 수 있다면 그건 평범한거 아닌가?
(대학 4년 + 군대 2년 + 휴학 또는 대학원 2년 + 기타 영어시험 준비 1년 = 29살)

by snowall 2008. 10. 5. 0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