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뉴트리노만 공부했다. 15시간동안 10페이지밖에 못 읽었다. 완전 좌절 -_-;

아무튼, 오늘 공부한 내용을 쉽게 정리해 볼 겸 해서 몇자 더 적어본다. 왜 이게 "쉬운 물리학"에 들어와 있는지는 질문하지 마시라. 나름 쉽다.
자. 레몬맛, 녹차맛, 복숭아맛이 있었다. 재료의 함량 비율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고, 각 재료가 변질되는 속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맛이 서로 달라진다는 뭐 그런 얘기를 대강 했었다.

이번에 할 얘기는, 배달 도중에 다른 맛을 추가하는 경우에 관한 이야기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얘기하면, 뉴트리노가 만들어져서 멀리 갈 때 전자의 밀도가 높은 곳을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얘기다.

일단 어렵게 생각해 보자.

전하를 가진 렙톤은 전자, 뮤온, 타우 입자가 있고, 전하를 갖지 않는 중성 렙톤은 전자 뉴트리노, 뮤온 뉴트리노, 타우 뉴트리노가 있다. 전하를 가진 렙톤과 중성 렙톤 사이에는 전자기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전자기력은 전하를 가진 입자들이 서로 작용하는 힘이지 중성 입자하고는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얘들이 이름에 공통된 부분을 갖고 있는건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자들이 괜히 이름에 공통된 부분을 넣지는 않는다. 바로, 이들 사이에는 약한 상호작용이 작용한다.

약한 상호작용은 말 그대로 약한 상호작용인데, 하는 일은 전하를 가진 렙톤과 중성 렙톤을 서로 바꿔준다. 이때, 같은 이름을 가진 것 들 끼리만 바꿀 수 있다. 즉, 전자는 전자 뉴트리노하고만 바뀌고 뮤온은 뮤온 뉴트리노하고만 바뀐다. 타우도 마찬가지다.
뭐, 아무튼 그렇다 치고, 뭐가 문제냐 하면, 지난번엔 뉴트리노가 만들어져서 질량 고유 상태로 빈 공간을 전파하고 이래저래 바뀌어서 막상 검출될 때는 만들어질 때와 다른 뉴트리노가 검출된다는 얘기를 했었다. 이번엔 이 뉴트리노가 빈 공간이 아니라 주변에 전자들이 아주 많은 곳을 지나치는 경우이다.

전자들이 아주 많은 곳은 우주에 여기저기에 있는데, 가령 태양같은 경우 핵 융합이 일어날 정도로 고밀도로 압축된 곳이기 때문에 전자 역시 아주 많이 있다. 그럼 전자 뉴트리노는 이런 전자들이 많이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계속 약한 상호작용으로 부딪치면서 지나가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여기서 한번 부딪친다는 것은 "검출된다" 또는 "방출한다"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럼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전자 뉴트리노가 전자로만 갈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전자 뉴트리노가 뮤온 뉴트리노로 검출될 수도 있고 타우 뉴트리노로 검출 수도 있다. (지난번에 계속 했던 얘기가 이 얘기다) 검출된 뉴트리노는 대전된 렙톤으로 바뀐다. 즉, 뮤온 뉴트리노로 바뀐게 검출되었다면 뮤온 뉴트리노는 뮤온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럼 뮤온으로 갔다가 다시 뉴트리노로 갈 때는? 이땐 또 뮤온 뉴트리노로 갈 것이다.

즉, 요약하자면, 처음엔 전자 뉴트리노만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게 수많은 전자들이랑 부딪치면서 뮤온 뉴트리노랑 타우 뉴트리노가 새로이 따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럼 이걸 지난번의 아이스티 얘기랑 섞어서 쉽게 이해할 수 없을까?

이번 얘기에서는, 아이스티 공장에서 슈퍼마켓까지 가는 길목에 중간 도매상을 한번 거쳐간다고 해 보자.

녹차맛, 복숭아맛, 레몬맛 아이스티가 있었다. 처음에 공장에서 출발할 때는 녹차맛 아이스티만 가득 담겨있었다고 하자. 녹차맛 아이스티를 가득 실은 트럭이 중간 도매상에 들러서 전국 각지의 슈퍼마켓으로 납품하는 것이다. 문제는, 녹차맛 아이스티가 벌써 맛이 변했다는 것이다. 출발할 때 100상자를 갖고 출발했는데, 중간 도매상까지 오는 사이에 그새 10상자가 레몬맛으로 변해 버렸다. 남은 녹차맛은 90상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이 녹차맛 90상자만 갖고서 각 슈퍼마켓으로 보내야 한다.

슈퍼마켓에서 녹차맛 50상자가 필요하다면, 맛이 변할 것을 고려해서 100상자를 미리 주문한다. 그럼 트럭이 도착할 즈음에는 50상자는 다른 맛으로 변하고 50상자는 여전히 녹차맛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물론 뭐가 어떤 맛인지는 직접 맛을 봐야 알겠지만, 이건 그냥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해 두자. 아무튼, 그런데 도매상에서 잠깐 들러서 각 슈퍼마켓으로 나눠줄 때 벌써 10%가 변질되어 있었다. 즉, 100상자를 실어오더라도 그중에 10상자는 이미 녹차맛이 아니었으므로 50%의 변질률을 보인다면 슈퍼마켓 주인은 녹차맛 50상자를 기대했는데 정작 녹차맛은 45상자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 보고서 슈퍼마켓 주인은 "공장에서 나한테 사기친거야?"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자. 중간에 한 단계를 거쳐오면서 아이스티가 변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오해되었다. 이런식으로 오해되어서, 사실 뉴트리노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서로서로 조금씩만 섞여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전자의 밀도가 아주 높은 곳을 지나쳐 오면서 "더 많이" 섞인 것으로 오해되는 것이다.

무슨 얘긴지 참 난감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멀쩡히 잘 걸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 얼마나 난감할지. 물리학자들이 이 현상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뉴트리노가 질량이 있다는 얘기도 난감하고, 서로 섞인 것이 크게 섞여있으면서 동시에 작게 섞여 있다는 모순되는 관측 결과도 난감하고 이래저래 난감하다.
물리학은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다.

by snowall 2006. 8. 18.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