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Red Queen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모두가 열심히 뛸 때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이길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사슴은 늑대의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사슴들은 여러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 그중 달리는 속력을 빠르게 하는 유전인자가 있으면 그런 유전인자를 가진 사슴들은 많이 살아남게 된다. 즉, 사슴의 달리는 속력은 점점 빨라진다. 그 결과, 늑대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진다. 그럼, 늑대들이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 빨라지는 사슴을 잡기 위해서 늑대를 빠르게 달리도록 하는 유전인자 또한 더 많이 살아남게 된다. 즉, 늑대의 달리는 속력도 점점 빨라진다.

그 결과는? 둘 다 열심히 진화하긴 했지만, 진화하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제자리걸음의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거울 나라의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얘기한 "우리 세계에서는 가만히 있기 위해서라도 있는 힘껏 뛰어야만 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두배 더 빠르게 뛰어야 하고" 라는 말의 본질이다. 물론 루이스 캐롤이 진화론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는 경쟁의 본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겪게 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에서 마주치는 1차 죽음의 트라이앵글과, 대학생들이 취업때 마주치는 2차 죽음의 트라이앵글, 모두 많은 사람들이 "생존"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경쟁한 결과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동물들이 겪는 경쟁과 약간 다른 점이라면, 여기서는 모든 생산자가 각각이 모두 소비자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 밟히고 찍힌 사람들은 가난을 벗을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가난을 벗을 수 없다"라는 생각이 그 자체로 사람들을 죽이는 절대적 관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을 밟으며 위로 올라가고 있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현실을 해소하려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모두가 각자 다른 방향에서 경쟁한다면, 한 분야에서 경쟁하는 것 보다 더 낮은 경쟁률로 더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대학에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소위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하는 길이 아니어야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뉴스에서 고아원 출신의 한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그 기사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어느 학과에 입학했는가이다. 기사를 아무리 살펴봐도 무엇을 전공하려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단지, 그 학생은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것 만으로 개천에서 용났고, 자수성가한 학생이 되었다. 그게 끝인가? 그 학생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어하고,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건가? 서울대에 입학하면 도대체가 성공이 보장되느냐는 말이다. 내 생각에, 서울대가 아니라 그 어떤 학교, 그 어떤 명문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자신의 꿈이 없고 그 꿈을 향해 매진하지 않는다면, 그런 삶은 성공할 수가 없다. 난 그래서 그 기사에 많이 실망했다. 기자의 관점은 결국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것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는, 고작해야 서울대에 가면 성공한다는 기존의 인식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서울대에 가는 건 좋은데, 가서 무엇을 공부하고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어쨌든, 그 학생이 기사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자신이 하고싶은 꿈을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혹시 자유전공학부인가? -_-;)

그리고 나도 꿈을 이루고 싶다.
by snowall 2008. 12. 16.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