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설명 ('짝수와 홀수'글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밑에 댓글에서 '아놔'님이 '짝수이다'의 부정으로 '홀수이다'는 불가하며 '짝수가 아니다'만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길게 논쟁을 했지만 내가 틀렸다. 이 글의 주제는 '짝수인가 홀수인가?'를 물어볼 때 '그럼 일단 그 수는 정수다'라는 점을 묵시적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짝수이다'의 부정이 '홀수이다'가 가능한가?는 내가 잘못 생각했으며, '짝수이다'의 부정은 '짝수가 아니다'만이 가능하다. 단, '짝수가 아니다'와 '홀수이다'는 동등한 표현이 맞다. 다만 '짝수이다'의 부정이 '홀수이다'는 안된다는 뜻이다.

 

우선 아래의 글을 읽고...(댓글까지 잘 읽어주기를 바란다.)

http://snowall.tistory.com/761

"아놔"라는 분이 나의 주장에 태클을 걸었다.

나의 주장의 요점 :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은, a가 정수라는 조건을 특별히 걸지 않았지만 "a는 정수이다"라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의 부정은 "a는 홀수이다"이다.
(물론, "a는 짝수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당연히 부정형이 맞다.)

아놔 님 주장의 요점 :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에서, a가 정수라는 조건을 특별히 걸지 않았다면 "a는 홀수이다"는 그 문장의 부정이 되지 않으며 "a는 짝수가 아니다"만이 올바른 부정이다.

아놔 님의 주장에는 오류가 없다. 물론 그게 내가 완전히 납득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논리적 오류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우리가 문장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즉, 짝수/홀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 부분이 문제다. 그리고, 그래서 집합론이 수학의 기초라는 거고...

수학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집합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리고 수학을 할 때 가장 중요한건 "우리가 어느 집합에서 논의하고 있는가?"이다. "a는 짝수이다"라는 말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시적인 가정이 없더라도 (a가 정수라는 조건을 특별히 걸지 않더라도) a라는 숫자를 정수로 가정하고, 그와 관련된 명제의 진리 판단을 정수 집합에서 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이 따지지 않는 한 "a는 짝수이다"라는 명제의 부정은 "a는 홀수이다"를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으며, 이 문제로 다투는 사람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놔님 빼고...)

하지만 a라는 수를 정수가 아니라 유리수나 실수 집합에서 선택하게 되면 짝수나 홀수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만약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을 실수 집합에서 논의할 때, 진리 판단을 하고 싶다면 "짝수"에 대해서 실수 범위에서 정의해야만 할 것이다. 가령 "a는 돼지다"라는 문장에 대해서 진리 판단을 하고 싶은데, a를 실수 집합에서 선택해서 갖고 온다면, 도대체 실수 집합에서의 "돼지"라는 개념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즉, 정의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판단을 할 수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실수에서 짝수/홀수라는 개념을 정의하지 않는다면 저 문장은 명제가 되지 않는다. 명제의 정의는 참/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보충 설명을 붙이자면, 아놔 님은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이 짝수/홀수 개념이 무의미하더라도 명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에서 어떤 식으로든 짝수/홀수라는 개념을 정의한 상태에서의 말이 될 것이다. 다시말해서, 아놔 님은 짝수/홀수 개념을 이미 알고 있고, 그 개념을 어떤 식으로든 실수 집합으로 확장시켜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짝수/홀수 개념을 실수 집합에서 정의한 이후에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앞서 예를 들었듯이 "a는 돼지다"라는 문장의 진리 판단을 실수 집합에 대해서 하려고 시도하면 어려움과 만나게 된다. 돼지라는 개념에 대해 정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짝수"라고 부르는 것이나 "홀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정의하지 않았다면,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은 명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아놔 님은 댓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ab가 홀수이면 a,b 모두 홀수이다. - 거짓이됩니다.
왜냐하면 a=1/2 b=2 의 반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칼럼처럼 홀수의 부정이 짝수가 되면
위명제의 대우가 a또는b가 짝수면 ab는 짝수다 가 되서
참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위의 칼럼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기 때문이죠.

즉 제대로된 대우는 a또는 b가 홀수가 아니면 ab도 홀수가 아니다. 가 됩니다.

이 부분에서는, 어찌되었든 2는 짝수이고 1/2는 짝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정수에서 짝수는 2n, 홀수는 2n+1처럼 정의된다고 하는 선험적 지식을 실수 집합에서 정의하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처음부터 정의하지 않았다면 이런 논의는 불가능하다.
오해할까봐 미리 말해두지만, 이것은 정수 집합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님을 밝혀둔다. 정수에서도 짝수나 홀수라는 개념을 정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심지어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의 진리 판단을 정수 집합에서 시도하더라도 문제점에 부딪치게 된다. 정의하지 않았으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실수 집합에서 짝수/홀수라는 개념을 어찌되었든 정의하자. 정수 집합에서의 정의를 그대로 실수 집합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즉, 어떤 실수 a에 대해서 2n을 만족하는 실수 n이 있으면 a는 짝수이고, 2n+1을 만족하는 실수 n이 있으면 a는 홀수이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2와 1은 모두 실수로 간주한다.
난 여기서 사칙연산의 경우 사칙연산에 참여하는 숫자들이 모두 같은 집합에 있어야 할 것을 주장하는데, 아놔님은 이에 대한 반례를 들었다.

예) 유리수의 정의
a가 유리수이다. <=> 어떤정수 p,q가 존재하여
a=q/p 를 만족(단p는 0이 아니다)

루트2가 유리수가 아님을 보이는데 p,q 도 유리수나
실수로 확장하나여?

루트2가 유리수라 가정하면 어떤 정수 p,q가 있어
루트2=q/p를 만족한다고 하면...

이렇게 시작하여 무리수임을 증명합니다.

이 예제를 보았을 때, 딱히 할말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예제는 적절하지 않다.
어떤 유리수를 표현할 때, a=q/p라고 쓰고 a가 유리수인지 무리수인지 판단할 때, 저기서 =기호가 의미하는 것은 대응 관계이다. 즉, 어떤 대상으로서 같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유리수"라고 부르는 집합에서 "a"라고 하는 원소는, 정수 집합에서 두개의 원소를 뽑아서 만든 (p,q)라는 원소와 대응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p,q)라는 기호를 간편하게 쓰기 위해서 q/p라는 표현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유리수는 2개의 정수 집합에서 원소를 각각 1개씩 뽑아서 만든 순서쌍들의 집합이고, 여기에 이항연산으로 덧셈과 곱셈이라고 부르는 것을 준 체(field)이다.
만약 q/p라는 표현 방식이 사칙연산의 나눗셈에 해당한다고 하면, (1,q)/(1,p)=(p,q)처럼 쓰는 것이 맞다. 즉, 사칙연산에 등장하는 p와 q는 모두 유리수로서 간주해야 한다. 또한, 기약분수로 만들었을 때 분모가 1인 것들을 유리수 집합에서의 정수로 간주하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유리수가 처음부터 두 정수의 순서쌍에서부터 정의되었음을 망각한 순환 논리의 오류가 된다. 더군다나, 유리수에서 우리가 나눗셈이라고 부르는 것이 따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떤 원소에 대해 곱셈의 역원을 정의하고, "곱셈의 역원을 곱한다"는 긴 문장을 줄여서 "나눗셈"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루트2가 유리수가 아님을 보일 때 (1,q)/(1,p)=(p,q)처럼 쓰고, 제곱해서 (1,2)=(1,q)*(1,q)/(1,p)*(1,p)라고 쓰는 것이 좀 더 분명한 표현형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쓰고나서는 2*p*p=q*q라고 쓸 수 있고, 여기서의 2, p, q는 모두 정수이기 때문에 짝수/홀수에 대해 자연스러운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루트2가 유리수가 되지 않음을 보일 수 있다.
이때 생각할 수 있는 반론은, 내가 방금 사칙연산은 하나의 집합에서만 해야 한다고 했는데, 루트2는 유리수가 아닌 실수니까 실수의 사칙연산과 유리수의 사칙연산을 혼용해서 쓴 것 아니냐고 따질 수 있다. 물론 말 된다. 하지만 루트2라는 수는 유리수에서도 "정의"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원소가 유리수 집합에 존재하지 않음을 보일 수 있을 뿐이다. 즉, "제곱해서 유리수 2가 되는 숫자"라고 쓰고, 그런 원소에게 "루트2"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여기까지는 유리수 집합에서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아무튼 아놔님의 주장은 "특별히 정수라는 가정을 하지 않는 한, ["a는 짝수이다"의 부정이 "a는 홀수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이 주장에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말하는것은 아니다. 짝수/홀수 개념을 어떤 식으로든 실수 집합로 확장하여 정의하고 나서 그런 문장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여기까지는 아놔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이 되겠다.

이후 내용은 추가되는 논의이다.

하지만 어쨌든 짝수는 2n, 홀수는 2n+1처럼 정의하자. 그렇게 되면, 모든 실수는 짝수이고, 모든 실수는 홀수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a는 짝수이다"의 부정이 "a는 짝수가 아니다"임은 명백하다. 그리고 "a는 짝수이다"의 부정이 "a는 홀수이다"가 될 수 없음도 명백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언뜻 궤변(?)으로 생각될 수 있는 주장을 하려 한다. 우리가 실수 집합에서 논의하는 경우에는 "a는 짝수이다"라는 명제는 "a는 홀수이다"라는 명제와 동치이다. (항상 진리값이 같다.)

그 증명은 간단히 다음과 같다. 임의의 실수 a를 선택한다. 모든 실수가 짝수이므로 a는 짝수이다. 모든 실수가 홀수이므로 a는 홀수이다. 따라서 a는 짝수이면서 홀수이다. 임의의 실수 a에 대해서 이 논의가 성립하므로 나의 주장은 증명된다.

"a는 짝수이다"라는 문장의 부정이 "a는 짝수가 아니다"라는 건 명백하긴 한데, 어쨌든 이 주장은 거의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실수 중에서 짝수가 아닌 원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홀수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놔님은 논리적으로는 올바르지만 수학적으로는 비상식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짝수/홀수라는 개념은 집합을 두개로 나눌 수 있는 정수 집합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상식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는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 다른 수학자들과 토론할 때에는 대상으로 삼는 집합과 개념의 정의를 명확하게 해 두어야 한다. 안그러면 원래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싸울 수 있다.)

만약 집합을 확장해서 "짝수가 아닌 원소"와 "홀수가 아닌 원소"들을 실수 집합에 추가시킨다고 해 보자. 이런식의 일반화는 흔히 한다. 복소수는 실수에 "제곱해서 -1이 되는 수"를 넣고, 대수적으로 완비성을 가미해서 완성시킬 수 있다. 아무튼 짝수가 아닌 원소와 홀수가 아닌 원소를 포함한 확장된 실수 집합에서의 대수학은 어떤 형식이 될까?
짝수가 아닌 원소를 e라고 하고, 홀수가 아닌 원소를 o라고 하자. 즉, 우리가 논의할 집합은 "실수 집합과 {e,o}라는 집합의 합집합"을 대수적으로 완비성을 갖도록 만든 집합이 될 것이다. (물론 실수가 체(field)를 이루므로 우리가 논의할 그 집합도 체(field)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실수는 짝수이면서 홀수라고 했다. 그렇다면, e와 o는 서로 다른가?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e와 o가 대수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면 e*o는 어떤 숫자인지 궁금해 질 것이다. 그리고 2e+1은 짝수인가, 홀수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닌가. 우리의 논의에 따르면, 확장된 실수 집합에서의 짝수/홀수 개념은 실수에서 정의한 것을 그대로 확장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2e+1은 또한 홀수이다. 대수적으로 완비성을 갖추어다면 2e+1=2(e/2+1/2)이므로 짝수이다. 2e나 2o, 2o+1같은 숫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논의를 확장해서 확장된 실수 집합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모든 원소가 짝수이면서 홀수가 된다. 그럴거면 왜 확장했나 싶기도 하다.

이게 쓸데없는 논의가 된 이유는, 정수는 덧셈과 곱셈에 대해 군(group)이고, 덧셈과 곱셈에 대해서 환(ring)을 구성하지만, 곱셈에 대한 역원을 논의하지는 않기 때문에 체(field)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곱셈에 대해 역원이 존재하는 원소가 딱 하나 있긴 하다. 그건 물론 항등원이다.) 체에서는 앞서 내가 논의한 바와 같이 짝수/홀수 논의가 거의 (어쩌면 완전히) 의미가 없다. 이때 말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은 개념이 없다거나 논리적으로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쓸데가 없다는 뜻이다. 정말 쓸데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짝수/홀수를 따지는 경우에는 그 집합을 정수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수학자들의 상식이 된 것이다.

일단 논의는 여기서 마치고, 이제 감정적인 부분을 정리하자.

이런 이유로 네글자군 님이 아놔 님에게 억지를 쓴다고 말한 것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이다. 나도 아놔 님이 억지를 쓴다고 생각했고,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아놔 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댓글로 생각을 밝혀주셨으면 좋겠다.

by snowall 2009. 8. 17.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