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이란, 간단히 말하면, 좋은 유전자는 남기고 나쁜 유전자는 없애서 인간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제안이다. (학문이 아님...-_-)

이것은 꽤 그럴듯 하다.

예를 들어, 발톱과 손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연히 그런 사람은 발톱과 손톱이 없을 것이다. 발톱과 손톱이 없으면 불편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열등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지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 사람은 당연히 에이즈에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유전자가 우등한 유전자라는 점에는 또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우등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 중에서, 우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많이 낳도록 적극 장려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점점 발전해 나갈 테니까. 가령, 다운 증후군이나 혈우병 같은 병을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출산을 금지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행복해 질 수도 있다.

여기까지 읽고 "오...그럴듯 한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오류에 빠진 것이다.

한가지 가정을 더 해볼 수 있다. 발톱과 손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유전자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지도록 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면? 그럼 그 유전자는 열등한 것인가 우등한 것인가?
말도 안되는 가정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이런 사례는 실제로 찾아볼 수 있다.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겸형 적혈구 빈혈증이 바로 그것이다. 겸형 적혈구 빈혈증이란, 적혈구를 만드는 유전자가 좀 특이한 것이 있어서 적혈구가 동글동글하게 생성되지 못하고 낫 모양으로 휘어져서 생겨버리는 증상이다. 그리고 적혈구의 모양 때문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빈혈에 걸리는 병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보면 아무리 봐도 열등한 유전자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유전자는 말라리아에 내성이 생기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 즉,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빈혈에 괴로워 하지만 말라리아에 강하다는 장점이 생기는 것이다. 이 차이는, 빈혈보다 말라리아가 더 치명적인 동네에서는 엄청난 장점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 유전자는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만약 우생학적 관점에서, 빈혈에 자주 걸리는 유전자를 맹목적으로 없애버렸다면, 말라리아에 내성을 가지는 사람은 없어지게 된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좀 있다. 굳이 그 유전자가 아니더라도 말라리아에 내성을 갖도록 하는 유전자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유전자나 우등하다고 생각되는 유전자들이 미래에 환경이 바뀌었을 때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가령,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할 때, 만약 에이즈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면 그 유전자는 아무런 이득이 없게 된다. 즉, 유전자가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조건들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주변 환경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역사에는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나치의 인류 보완 계획(?)이 성공하여 이 세상에 아리안 인종만 남고 다른 인종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만약 아리안 인종만 걸리는 특수한 질병이 발생한다면? 그 다음은 인류 멸종이다. (지구 멸망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하기 바란다.) 즉, 아리안 인종만 남게 된 상황에서 그런 특수한 질병이 발생한다면, 아리안 인종은 가장 우수한 인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열등한 인종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이 신경쓸 수 있는 미래는 기껏해야 100년도 되지 않는다. 100년 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줍잖은 기술로 우생학적 관점에서 소위 "병신"들을 모두 없앤다고 해봐야 그건 그냥 인간은 정말 멍청하다는 것을 전 우주에 알릴 뿐이다.

진화의 속도는 주변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에 따라서 변화한다.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 진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진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유전자가 먼저 생존에 적합한 개체를 만들어 내고 번식을 많이 하는 개체를 만들어 내는가가 관건일 뿐, 그 유전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인간이 인간의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그건 유전자랑은 전혀 관련이 없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환경은 인간이 바뀌면 같이 바뀐다. 더군다나, 인간이 진화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고 싶다면, 아무리 적어도 수십 세대 이상(1천년 이상)의 변화가 누적되어야 한다. 이정도 속도도 자연적인 진화와 비교한다면 무지막지하게 빠른 속도다. 하지만 인간은 1천년 이후의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1천년 전에 우리가 뭘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1천년 후의 미래 인간들이 그들에 대해 1천년 전인 우리의 역사를 보면서 도대체 이 인간들은 뭘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그런 마당에, 인류를 인위적으로 진화시켜서 우등한 인종만 남기고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열등한 발상이다. 진화는 결코 발전이 아니다. 인간의 진화는 인간이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by snowall 2009. 4. 22.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