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기초 수학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대학원 다니는 기간동안 수학적으로 사용했던 기술은 복소수의 사칙연산과 삼각함수의 덧셈공식이 거의 대부분이다. 지금 있는 연구소에서, 실험 결과를 분석할 때 사용하는 수학적 도구도 그다지 많지가 않다. 구분구적법, 지수 함수의 성질, 로그 함수의 성질, 1차 방정식의 성질, 이런것 정도 사용한다. 물론 최소제곱법을 이용해서 실험값을 함수에 근사 시키는 것은 고등학교때는 배우지 않지만, 많이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확률, 통계 과목에서 배우는 평균, 표준편차 등등을 그대로 갖다가 사용한다. 더 어려운 뭔가가 나오지도 않는다. 이런 내용을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면서 불행한 일이다. 정말 쉬운 내용을 정말 어렵게 배우는데 그게 왜 배워야 하는지 몰라서 대충 넘어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때 수학을 부실하게 공부했더라면 아마 지금 정석 책에서 공식을 찾아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것이다.[각주:1]

다만, 고등학교 때 배워야 했지만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 부분이 있다. 이런 쉬운 것들을 이용해서 어려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능 시험에 나오는 수학 문제에 보면 한가지 분야의 공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여러 분야의 공식을 사용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나온다. 삼각함수, 로그, 함수론, 미분, 복소수, 정수론 등등을 종합해야 하는 것들이 등장한다. 덕분에 문제가 좀 억지스러워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실제 분야에서는 정말 복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지금 내가 분석중인 실험 결과는 그 결과값을 x축은 선형으로, Y축은 로그값으로 그래프를 그려야 한다. 이것을 로그-선형 그래프라고 한다. 로그-선형 그래프에서 직선이 그려졌다면, 선형-선형 그래프에서는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로그-선형 그래프에서 Y축 방향으로의 평행이동은 실제 함수에서는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인가? 로그-선형 그래프의 X절편은 실제 함수의 어떤 값에 해당하는가? Y절편은? 이런 내용들은 고등학생들에게 설명해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에 한해서...)

대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선형대수학, 미분적분학, 미분방정식 정도를 제외한다면 실제 연구에서는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선형대수학이랑 미분적분학은 고등학교에서 등장한 수준보다 조금 더 어려워지는 정도에 불과한 수준만이 사용된다. 만약 고등학교 때 수학적 기초를 튼튼히 다져두지 않는다면 이공계로 진출해서 뭔가 일을 해보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레고 블럭을 쌓아야 하는데 레고의 튀어나온 돌기를 홈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레고의 평평한 면끼리 딱풀로 붙여서 만드는 것 같은 과정이다. (이런건 독창적이라고 하지 말자...)

문제는 우리나라의 중등교육과정에서 수학 교육은 단지 입시를 위한 기계적 연습의 장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주어진 문제를 보고 유형별로 외워둔 풀이법을 머릿속에서 검색한 후, 그 풀이법에 맞춰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잘해야 두세가지 유형을 조합하여 풀 수 있을 뿐이다. 이건 문제해결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깎아먹는 방법이다. 학생들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 알아야 할 몇가지 기초적인 사실만 있으면 밑바닥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이라면, 이후에 어떤 유형의 문제가 다가오더라도 겁내지 않고 차분히 접근해서 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부디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해 주었으면 한다. 수학 선생님이 그다지 강의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공식을 칠판에 적었고 그것을 외우라고 한다면 일단은 외우고 그것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지 그것이 왜 그렇게 유도되었는지를 꼭 생각해 보자.[각주:2]

기초는 정말 중요하다.
  1. 덕분에 지금은 딴짓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본문으로]
  2. 무작정 외우기 전에 이해부터 하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단 외우고 나중에 이해하는 것이 시험 성적에는 더 유리하다. 단,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암기한 후에 이해하는 것을 잊으면 그것은 레고 블럭을 보고도 레고 조립 설명서를 봐야만 조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09.12.04 11:39
  • lex 2009.12.04 19:49 ADDR EDIT/DEL REPLY

    "고등학교때 수학을 부실하게 공부했더라면 아마 지금 정석 책에서 공식을 찾아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것이다."

    일단 정석이 없는 관계로 정석을 찾아보는 대신, wikipedia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ㅜㅜ;

    그 와중에, 신호책 다 떼고서 본다고 책장에 꽂아둔 선형대수 책은 저를 보며 비웃습니다.
    가끔씩, 뭔지 확실하진 않지만, "난 통계학이야~"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알고리즘들 또한 저를 보며 비웃습니다.

    역시 기초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

    • snowall 2009.12.05 01:14 신고 EDIT/DEL

      저는 왼손으로 아기 달래고 오른손으로 논문을 썼다는 오일러가 부러워요. 말년에 그렇게 키운 아들이 논문을 받아적어줬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천재는 육아에도 천재...;
      (물론...오일러가 모든 애들을 다 잘키운건 아니지만;;)

  • goldenbug 2009.12.04 21:20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제 책장에는 두 권의 정석과 두 권의 풀이집이 있는데, 당시 잘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시 공부해야겠습니다. ㅎㅎㅎ
    근데 이제 제가 수학 공부해서 어디다 써먹을지 그것도 애매하네요.

    • snowall 2009.12.05 01:17 신고 EDIT/DEL

      연구직에 있지 않는 한은 써먹을만한 일이 그다지 없지만...
      수학적 분석력은 예전에 웹 서비스 기획할 때 유용하게 써먹은 경험이 있습니다. ㅋㅋ

  • dbskzh 2009.12.05 11:51 ADDR EDIT/DEL REPLY

    딱히 잘하는 건 없는데 기초는 걱정 안하는 1人///ㅋㅋㅋㅋㅋㅋㅋㅋ

  • Aptunus 2009.12.05 22:52 신고 ADDR EDIT/DEL REPLY

    지즘은 주로 미방이나 함수들을 주로 다루다 보니, 고등학교때 배웠던 수학들은.. 잘 기억이 안나는군요... 그래도 수학은 기초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죠

    • snowall 2009.12.06 03:29 신고 EDIT/DEL

      기억나지 않으면 그때그때 찾아서 쓰면 되죠 뭐.
      외우고 있으면 찾는 시간이 절약될 따름입니다.

  • NoSyu 2009.12.17 12:12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트랙백을 타고 왔습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온 트랙백이라 처음에는 스팸인 줄 알았습니다.OTL...ㅜ
    제 생각에도 일단 외우고 그 다음에 왜 그런 공식이 나오는지 이해한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 snowall 2009.12.17 12:18 신고 EDIT/DEL

      저는 스팸을 보내지 않습니다. 스팸이 저를 보내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