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올라오다가 버스 안에서 "김연아, 충격의 2위"라는 방송 보도를 봤다. 내용은 김연아 선수가 일본에서 있었던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2등을 했다는 건데, 난 전혀 충격이 없었다. 그게 왜 충격적이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걸 충격적이라고 보도하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김연아 선수가 우리나라 국가대표이고, 김연아 선수가 2등을 했다는 뜻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2등이라는 뜻이다. 그게 뭐 어때서?

충분히 잘한 것 아닐까? 김연아 선수가 최근 몇년간 계속해서 1등을 유지했고, 앞으로도 몇년간은 상위권에 있을 것이 예상되는 굉장히 잘하는 선수이지만 세상에 김연아 선수만 1등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김연아 선수보다 더 뛰어난 선수는 언제든지, 몇명이든지 등장할 수 있다.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고 점점 추격해서 더 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연아 선수가 노력이 부족했나? 그것도 아닐 것이다.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는 김연아 선수만이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좋은 결과는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서 그만한 결과를 이뤄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충분한 만큼 이상의 노력을 했고 공정하게 경기를 펼쳐서 얻은 결과라고 한다면 그것이 설령 세계 최하위라 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물며 2등이다. 세계에서 2등을 한 것이다. 난 김연아 선수에게 더 열심히 해서 다음번엔 꼭 1등을 하라는 따위의 말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다. 2등을 하든 3등을 하든 상관 없으니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만큼 노력하기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등을 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올림픽 중계를 봐도 은메달부턴 아쉬워한다. 물론 더 잘할 수 있는데 2등한건 아쉽긴 한데, 아쉬움은 경기를 직접 참가한 선수 본인이 아쉬워하면 되는 것이지 그걸 지켜보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아쉬움을 넘어서 그 선수를 좀 더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면 충분하다고 본다. 김연아 선수가 계속 1등 하다가 가끔 2등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부진"이라든가 "충격의" 같은 말을 들을 정도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원래 1등이란 1등에 도달하는 것보다 1등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1등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거기에 안주하면 순식간에 꼴찌로 떨어진다. 1등을 하면 좋지. 나쁜건 아닌데, 그래서 그렇게 아둥바둥 죽기살기로 노력해서 1등을 하면 뭘 어쩔건데?

옛날에, 고려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장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칭찬해도 무참히 깨버렸다. 주변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이 생각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길을 묵묵히 간다면 그건 좀 바로잡아줘야겠지만, 그래서 스승이 있는 것 아닌가. 아무튼, 뭔가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그 분야의 1등을 할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만족하는 만큼 노력하였는가를 스스로 평가하고, 스스로 보기에 만족스럽다면 거기서 멈추면 된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만큼 더 노력하면 된다. 현재에 만족한다면 행복할 것이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발전할 것이다. 이것이 목표인 사람은 만족하느냐 아니냐에 관계 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위라고 하는, 지극히 드문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한계에 도달했는데도 무모한 노력을 할 것이며, 충분히 만족스러울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성공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1등을 포기해라. 꼴등을 겁내지 마라. 당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기준인데, "나는 어느 지점에서 만족할 것인가?"를 정하면 된다. 나머지는 누구나 다들 하듯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추가 : 판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논란이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말끔히 해명되기를 바란다. 1등이든 2등이든 상관은 없으나, 평가는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
by snowall 2009. 12. 5.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