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웹 사이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만큼은 아마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화려한 것이 좋고 나쁘고는 이 글에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가 아니다. 어째서 화려해진 것일까?

이것을 공작이 화려하게 진화한 데서 이유를 찾고자 한다. 공작은 숫놈은 대단히 화려하고 암놈은 그냥 수수하다. 숫놈이 화려하게 진화한 이유는 깃털이 길고 화려할수록 암놈의 선택을 받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실험에 의해서 증명된 사실이다.[각주:1]즉, 이것은 자연 선택이고, 개체변이에서 화려한 표현형이 살아남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화려하면 암놈의 눈에만 잘 뜨이는게 아니라 포식자의 눈에도 잘 뜨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화려한 숫놈들은 도태된다. 그 결과, 크고 화려한 쪽으로 발달하는 숫놈의 진화 경향이 멈춰졌다. 만약 포식자가 없었다면 엄청나게 길고 큰 꼬리깃털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웹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고 한눈에 확 들어오고 뭔가 북적북적대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한다. 물론, 나처럼 아주 단순한 웹사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현재 살아남은 대형 사이트들을 보면,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화려한 사이트들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각주:2] 따라서 우리나라의 웹 사이트들은 점점 화려하게 진화하고, 마치 숫놈 공작의 깃털처럼 웹 사이트의 빠른 움직임을 제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웹 사이트는 일단 확실히 느리다.[각주: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화려해진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연결속도가 사람들의 인내심 범위 내에서 웹 사이트를 읽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제는, 저사양 컴퓨터를 이용해서 웹 서핑을 하는 경우다. 플래시로 도배된 사이트의 경우, 1GHz이하의 CPU작동 속도를 가진 컴퓨터에서는 거의 정지해 버린다. 만약 플래시를 이용해서 메뉴 이동을 해야 한다면 그 사이트를 사용하려면 돈을 따로 내고 PC방을 가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은근히 심각한데,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차츰 화려해지는 웹 사이트를 이용하지 못하고, 인터넷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웹 사이트 제작자들이 저사양 컴퓨터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페이지를 따로 제작을 해야 한다. 적어도 플래시로 메뉴를 만드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각주:4]

웹 사이트가 화려해지는 것은 가치중립적이지만, 그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나쁜 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가 고도로 성장해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일 것이다.

  1. 눈먼 시계공에서 본 것 같다 [본문으로]
  2. 물론, 공정한 비교는 아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만든 회사 사이트인데, 선택을 많이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플래시나 그림 하나 없이 텍스트만 있다면 아마 회사 사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것 역시 선택압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3. 만약 당신이 인터넷 옵션에서 그림, 소리, 동영상 표시하기를 모두 꺼 놓고 웹 서핑을 하면 이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본문으로]
  4. 이 논의는 상당히 제한적인 논의일 수 있다. 좀 극단적으로 말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냥 두기로 한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07. 1. 3.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