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07)로 24살이다.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각주:1]

내 전화기에 들어있는 이름 갯수는 346개. 그중 회사나 가게 전화번호도 있으니까, 대략 300명 정도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고 치면 맞을 거다. 그중 내가 꽤 친한 친구들은 얼마나 될까? 이 얘기를 들으면 기분 나빠할 친구들도 있겠지만, 난 친구들과의 우정을 정량화 시키기를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더 친한 친구와 덜 친한 친구를 구별한다.[각주:2] 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가장 소중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동시에 혹시라도 그가 나를 배신해도 그를 절대로 원망하지 않음. 아무리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더라도, 다시 연락된다면 언제라도 반가운 친구. 당연히 매일 만나도 반가운 친구.
소중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가 나를 배신하면 좀 원망할 것 같음. 아무리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더라도, 다시 연락된다면 언제라도 반가운 친구. 당연히 매일 만나도 반가운 친구.
친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 역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기대하지는 않음. 그가 나를 배신하면 충격 먹을 것 같음.
잘 지내는 친구 - 내가 그를 배신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깊은 사정은 잘 모름. 그가 나를 배신하면 약간 충격 먹을 것 같음.
아는 친구 - 친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므로 배신 여부를 따지지 않음.
싫은 친구 - 싫어함. 일부러 피해 다니며, 보더라도 굳이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음.
여기서, 배신이란 그 친구의 어떤 행위나 발언으로 내가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으로 큰 상처를 받아서 그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가장 소중한 친구는 지금 양군, 김양, 송양, 이렇게 셋이다. 원래는 한명 더 있었는데, 그는 꿈을 찾아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채 연락 두절이다. 다시 연락된다면 좋겠지만, 친구 목록에서 빼지 않으면 그리워 견딜수가 없으므로 일단 삭제했다.

소중한 친구는 김군, 류군, 김양, 이양, 황양, 이렇게 다섯이다.

나머지, 친한친구는 대략 10명정도, 대부분은 잘 지내는 친구에 해당한다. 싫은친구는 현재 딱 한명 있다.

소중한 친구/가장 소중한 친구 그룹은 중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다. 이제 거의 10년정도를 알고 지내게 되는 친구들이다. 깊이있는 대화도, 속에 있는 얘기도 아주 많이 해봤고, 내 삶의 이야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1년에 한번이라도 가끔 전화를 걸었을 때 항상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는 친구들이다. 각자 알게 된 경로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그들끼리는 서로 잘은 모르고 대충 안면만 있는 사이지만, 내게는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다.
내 친구들을 분석해보면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내가 고등학생 시절 이후엔 의도적으로 여자에게만 접근했기 때문인데, 남자들은 굳이 접근하거나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술 같이 마시고 놀러다니다 보면 친해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여자애들이랑 친해봐야 결혼하면 다 떠나간다고 경고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를 이해해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라고 해서 그런 얘기를 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들을 골라서 사귀는데 별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상, 그저 내 일방적인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과연, 나는 내 친구들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있는지,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절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은 없겠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더 많이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더 많이 나를 얘기해주고 싶다.

소중한 친구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부러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친구사이라는 인간관계는 일부러 만드는게 아니라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친해져서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1. 사실은, 교수님이 나보고 계산하라고 시키신게 더럽게 안풀려서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고 싶어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고 싶었다. [본문으로]
  2. 물론 이 구별은 나의 내부적인 관점이고, 평소에는 degenerate되어있다. 실제로 이것이 드러나게 되는 경우는 다른 social interaction이 perturbation을 줄 때이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07. 1. 10.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