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노래가 있다.
넘어지지 않을 거야, 나는 문제 없어.

...그러나 넘어지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3. 이미 미끄러지는 도중에
최대 정지 마찰력을 항상 계산하고 예측하면서 걸어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미끄러짐을 언제나 예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미 미끄러지고 있다면 그 다음에 고려해야 하는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과 넘어지더라도 안전하게 넘어지는 것이다.

넘어짐은 물체의 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전적인 보드게임인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 항상 우리는 지우개를 "넘어뜨리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굴러가는 볼링공은 "넘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넘어지는게 너무 작은 간격으로 넘어져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멀쩡히 가만히 있는 물체의 방향이 바뀌려면 힘이 작용해야 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방향이 바뀐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위치가 바뀐다"와 "방향이 바뀐다"는 약간 다르다. 일반적으로 입자 1개만을 다루는 물리학에서는 입자의 위치가 중요할 뿐 입자의 방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입자가 여러개가 있는 경우에는 입자들끼리의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입자들이 있는 계의 전체적인 방향이 중요하게 된다. 그래서 그걸 분석하기 위하여 물리학에서는 토크(torque)와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힘 = 가속도"이듯이 "토크 = 각가속도"이다. 회전운동을 설명하려면, 우선 회전축부터 정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이 넘어지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므로 사람이 넘어질 때 무엇에 대해 회전하는지 생각해 보자. 발바닥 끝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넘어진다"는 것은 "방향이 바뀐다"인데 우리는 걸어가면서 "위치가 바뀌는" 운동만을 하고 있다. 방향이 바뀌려면 토크가 작용해야 한다. 힘이 작용하면 토크가 발생할 수 있지만, 힘이 무작정 작용한다고 해서 토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토크는 회전을 만드는 힘이기 때문에 회전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 일단 아래의 글을 읽고 오자.
http://snowall.tistory.com/124

넘어지려면 토크가 발생하면 되고, 넘어지지 않으려면 토크가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 토크를 구성하는 것은 3가지가 있는데, 힘의 크기, 힘의 방향, 힘의 작용점이다. 만약 힘의 크기가 0이라면 토크가 발생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아무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언제나 중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힘의 크기를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만약 힘의 작용점이 회전 축 위에 있다면 토크가 작용하지 않는다. 회전문을 지나갈 때 회전 축을 밀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아니면 힘의 방향이 작용점부터 회전 축을 잇는 직선과 평행하다면 토크가 작용하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는 방법은 이 3가지 조건중의 하나를 만족시키면 된다.

우리가 가만히 서 있을 때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중력의 방향이 작용점과 회전축을 잇는 직선과 평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걸어갈 때 항상 "넘어지면서" 나가고 있다. 단지 내딛는 발이 완전히 넘어지기 전에 반대 방향의 토크를 걸어서 넘어지는 것을 멈추었을 뿐이다. 만약 반대 방향의 토크를 걸어주지 못한다면 걷다가도 넘어진다. 걷다가 넘어지는 상황은 그래서 발생한다. 걸어가려고 앞으로 넘어지고 있는데 발을 딛지 못하면 넘어진다. 이런 상황은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가다가 계단의 수를 잘못 세서 허공에 발을 딛거나, 공명의 함정에 빠졌을 때 일어난다. 또는, 앞으로 걸어갔는데 버티는 발이 내딛는 발의 신발끈을 밟아서 내딛는 발이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에 발생한다. 앞으로 내딛는 발이 앞으로 나가고 있는 동안에는 버티는 발이 고정되어서 회전축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발이 미끄러지면 회전축이 바뀌게 되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토크가 작용하면서 넘어질 수 있다. 이렇게 넘어지는 경우를 방지하려면 지팡이를 짚거나 근처의 기둥이나 난간을 잡아서 예상치 못한 회전축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회전축의 변화로 바꾸거나(지팡이) 회전축의 변화에 대해 거꾸로 토크를 걸 수 있는 방법(난간, 기둥)이 있다. 회전축이나 힘의 작용점을 적절히 조절하여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가령, 한쪽 발이 미끄러졌을 경우에 팔을 적절히 펼쳐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면 된다. 몸 전체의 무게중심이 버티는 발 위에 있는 한, 힘의 방향이 작용점과 회전축을 잇는 직선 위에 있기 때문에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각주:1]

넘어진다는 느낌이 들면 아예 다리를 구부려서 주저앉아 버리는 방법도 있다. 내가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넘어지면 갑자기 넘어지는 것 보다 덜 다치거나 아예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겉보기에는 개그로 보이지만.

4. 이미 넘어지는 도중에
이미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넘어져야 한다. 머리와 몸통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인데, 많은 경우에 낙법이 도움이 된다. 특히 전방낙법과 후방낙법 정도는 금방 배울 수 있으므로 한번 배워두자. 측방낙법과 전방 회전낙법같은 건 넘어질 때 써먹는 경우는 드물다.

물리학에서 "충격"은 "운동량의 변화"이고 "충격력"은 "충격 시간동안의 운동량의 변화"이다. 충격력이 실질적으로 우리 몸에 골절이나 상처를 입히는 주범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위면적당의 충격력이다. 같은 힘도 넓게 퍼져서 맞는거랑 집중되서 맞는건 아픔의 정도가 다르다. 충격력을 작게 만들려면 면적을 늘리거나, 운동량의 변화를 줄이거나, 충격시간을 늘리면 된다. 이것이 곧 낙법의 기본 원리가 된다.

운동량의 변화는 다시 속도와 질량의 곱이 변하는 것인데, 넘어지는 상황에서 체중을 줄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므로 속도 변화를 줄여야 한다. 속도 변화를 줄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넘어진다는 것은 이미 통제가 불가능한 신체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속도 변화는 줄일 수 없다.

낙법은 최대한 넓은 면적으로 중요 부위인 머리와 몸통을 보호하면서 최대한 천천히 정지하는 방법이다.

앞으로 넘어질 때, 아직 넘어간 각도가 크지 않다면 재빠르게 다리를 더 내딛어서 다리가 벌어지는 모양으로 만들자. 그럼 자세는 좀 이상해도 "서 있는" 상태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이미 다 넘어가버린 상황이라면 양 팔을 앞으로 뻗는게 좋다. 이때, 팔꿈치를 완전히 펴버리면 팔이 바깥으로 꺾여서 크게 다칠수도 있으므로 약간 안으로 구부린 상태로 짚는다. 전방낙법에서는 손바닥에서 팔꿈치까지 한번에 대는 것이 정석인데, 실수하면 팔꿈치가 먼저 닿게 되어서 더 아프고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팔꿈치보다는 손바닥쪽이 조금 먼저 닿는 느낌으로 넘어지면 덜 아프다. 이때 중요한건 손바닥이나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걱정하지말고 완전히 넘어져야 하는 것이다.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면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미 넘어지는 상황에서 걱정해야 하는건 다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넘어가고 있으면 그냥 넘어지자. 또한, 앞으로 넘어질 때는 앞에 날카로운 것이 없는지 보면서 넘어져야 한다. 찔리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수도 있으므로 만약 날카로운 것이 앞에 있다면 가급적 옆으로 비켜지도록 넘어져야 한다.

눈 위로 넘어지는 것은 분명 덜 다치고 덜 아프다. 하지만 눈에 파묻힌 상태로 있는 날카로운 물건이나 돌멩이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눈 위로 넘어지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몸 앞으로 오도록 하면 좋다.

뒤로 넘어질 때는 발을 뒤로 딛으면 된다. 문제는, 다리를 벌릴 때 앞으로 딛는건 쉽지만 넘어지면서 뒤로 딛는 것은 어렵다. 충분히 뒤로 발이 빠지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베낭을 메고 있다면 안심하고 넘어져도 좋다. 이 경우에는 완전히 뒤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 엉덩이를 바닥에 찧는 것 보다 낫다. 엉덩이를 바닥에 부딪치게 되면 척추나 골반이 상하거나 골절될 수 있는데 베낭을 메고 있으면 더 큰 힘으로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반대로 뒤로 완전히 넘어가서 등부터 땅에 닿게 되면 베낭이 일종의 쿠션 역할을 해서 덜 아프다. 또한, 머리보다 베낭이 먼저 닿으므로 머리도 비교적 안전하다. 물론 뒤에 튀어나온 돌이 있는 경우에는 크게 다치겠지만.

뒤로 넘어질 때에도 마찬가지로 손을 짚게 되는데, 팔꿈치가 완전히 펴진 상태로 짚으면 골절이 발생할 수 있다. 살짝 구부러진 정도로 짚어야 충격이 흡수되면서 부드럽게 넘어지게 된다. 후방낙법에서는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팔을 양쪽으로 내려치는것이 요점인데, 연습이 안되면 넘어지는 긴급 상황에서 팔을 타이밍에 맞춰서 내려칠 수가 없다. 고개만 앞으로 숙여도 다행이다.

낙법은 거의 모든 종류의 무술 도장에 가면 배울 수 있다.
  1. 로봇이 걷기가 어려운 이유가 항상 넘어지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넘어지다가 도중에 끊고 멈춰야 하는데, 그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것이 힘들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11. 1. 2.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