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누군가 나에게 이메일로 논문을 한편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수학 논문인데, 심하게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다. 대한수학회에 투고했는데 참고문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고 한다. 그 논문을 읽으면서 느낀점을 적어둔다.

1. 문제의 명확성
학자로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면서 골치아픈 실수다. 논문을 주의깊게 끝까지 읽었는데 무슨 문제를 해결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과학 논문이라면, 실험도 열심히 했고 분석도 잘 되었고 결과도 믿을만한데 가설이 없는 논문에 해당한다. 과학자들의 연구 방법중에는 적당히 설계한 실험을 일단 수행하면서 가설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논문을 쓸 때는 실험 결과가 지지하는 가설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힌다. 그 가설을 찾아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실험을 한 셈이다.

2. 문제의 중복
이미 해결된 문제인데 또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다. 물론, 어떤 문제가 한번 해결되었다고 해서 그 문제를 다시 해결하는 것이 의미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해결된 문제를 이미 해결된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쓰는 경우가 가끔 있다. 참고문헌 안 찾아보는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한다. 이재율씨가 대표적으로 이 실수를 저질렀다.[각주:1] 이미 해결된 문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내용은 좋은 논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새로운 방법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렇게까지 주목받지는 못할 수 있다.

3. 문제와 해결의 일치
문제의 명확성에서 연결되는 문제점인데, 처음에 제기한 문제와 결론에서 해결한 문제가 다른 경우이다. 더 황당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무슨 문제를 푼 것인지 명확히 찾아내서 적어야 한다.

4. 설명의 부실함
나름 잘 쓴 논문이지만 뭔가 엉성해보이는 경우가 있다. 저자 본인은 그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만 그 논문을 처음 읽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어느정도는 생소하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읽고 있는 논문은 자신이 아직 경험 해보지 않은 새로운 사실, 문제, 실험 등에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저자가 논문을 쓰면서 머릿속으로는 설명을 하면서 원고에는 쓰지 않는 설명들이 많아진다. 이재율씨는 이 부분을 잘못했는데, 아마 그 설명을 쓰려면 한두장 갖고서는 모자랐을 것이다. 아무튼, 설명은 적어도 그 분야의 전공자라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상세히 써야 한다. 그 분야의 전공자가 그 분야의 논문을 쓰는 경우에는 오히려 빠트리지 않는다. 마치 관용어구처럼,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5. 설명의 방대함
부실함과는 반대로, 쓸데없는 설명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논문이 무슨 SF소설도 아니고, 읽다가 삼천포로 빠지게 된다.

6. 참고문헌
어떤 학문도 기존에 연구된 사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논문에 참고문헌은 필수이다. 기존에 논의된 학설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연구를 수행했다면 당연히 그 학설을 설명하는 논문을 참고문헌에 넣어야 한다. 기존의 학설을 반박하는 연구를 수행했다면, 마찬가지로 그 학설에 대해 잘 설명하는 논문을 참고해야 한다. 기존에 정립된 학설이 없는 경우에는, 관찰된 사실을 보고한 논문을 참고해야 한다. 기존에 정립된 학설도 없고 관찰된 사실도 없는 경우라면, 대부분의 경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점에서는 다른 연구를 참고하지 않을 수 있지만, 논문에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다른 노력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분명히 밝히고 시작해야 한다.

7. 논리적 완결성
본문에서 제시한 근거가 주어진 명제를 반드시 지지해야 한다. 즉, 1. 제시한 근거가 참일 것. 2. 제시한 근거가 참이라면 주어진 명제가 참이라는 것이 참일 것. 1번이 되는데 2번이 안되면, "신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1239582832은 정수이기 때문이다"[각주:2] 같은 주장도 참이다. 물론, 2번이 되는데 1번이 안되는 경우에는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이면지 만들지 말고 버리는 게 좋다.

8. 언어
다 좋은데 언어가 안되는 경우가 있다. 맞춤법이 틀린 경우, 오타가 많은 경우 등. 또, 영어에서는 관사 a와 the를 실수하면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일상적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있고, 학자들도 일상에서는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논문에서는 그러면 안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단지 실수일 뿐이고 그것이 전체적인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끔 오타를 바로 잡았더니 결과가 틀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맞춤법이나 오타나 문법 같은 부분은 논문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확히 읽기 위해서 맞기를 바라는 부분이다.

논문 잘 쓰는 방법
1. 문제를 해결했다면, 일단 쓴다.
2. 같은 연구분야에 있는 친구에게 보여준다. 첨삭받는다.
3. 다른 연구분야에 있는 (그러나 연구직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보여준다. 첨삭받는다.
이 과정을 더이상 고칠 부분이 없을 때 까지 무한반복한다. 나중에 논문을 잘 쓰게 되면 3번을 생략해도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1번과 2번은 생략하지 않는 것이 좋다.[각주:3]

그럼 오늘도 열공.
참고로, 위와 같은 문제가 있는 논문은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학술지에서는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끼리 상호간에 검토를 하도록 하는 Peer-review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웬만해서는 믿어도 좋은 논문들이다.[각주:4]
  1. 저지른 실수는 이것이고, 저지른 잘못은 다른 것이다. [본문으로]
  2. 원래는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써먹은 논증기법이다. [본문으로]
  3. 1번을 생략하고 싶은 과학자들이 많겠지만... [본문으로]
  4. 가끔 검토한 사람들이 전부 실수하거나, 전부 대충 검토하거나 해서 틀리거나 표절 논문이 통과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요새는 그러기 힘들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11. 4. 5.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