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커피 한잔하고 집에 오는데, 서울역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67세)가 나를 붙잡았다. "봉천동 가려면 여기서 타는거 맞아?" 라고 물어보면서.

"네, 여기서 타시면 되요"라고 나름 친절하게 대답을 해 드렸더니, 갑자기 이분이 나를 붙들고 흥미로울 것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물론 떡밥 없이도 낚이는 타고난 물고기인 나로서는 어김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이란걸 몰라서, 자네 결혼 했나?"
"아니요"
"결혼 빨리 해! 결혼 안하고 애 안낳는 것들은 다 도둑놈이야. 지금의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고 먹을 걱정 없이 사는건 다 부모 세대가 노력해서 이루어낸 건데, 후손이 없으면 안되지"
"네..."
"자네, 금, 은, 동 중에 뭐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나?"
"금 아닌가요?"
"아니야. 금도 은도 아닌 동이 제일이야. 다른 나라에서 금, 은은 다 털어가지만 동은 욕심내지 않거든. 일본에 가서도 동을 달라고 하면 다 주잖아? 우리나라 문화재가 금, 은으로 된 것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동으로 된 것은 많아"
"네..."
"자네 나이가 몇살인가?"
"28살입니다"
"결혼은 했고?"
"아직 못했는데요..."
"내가 예전에 김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었는데, 정치하는 것들은 다 쓸데없어. 당선이 되든 안되든 선거 끝나면 연락이 안돼. 김 대통령 당선되었잖아, 근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안하더라. 내가 그때 많이 섭섭했지. 그래서 이젠 안해"
"네..."
"내가 해방둥이야. 언제인지 알아?"
"45년 8월 15일이죠"
"그래 맞아"
"네.."
"옛날에는 길 가다가 붙잡아서 술 사준다고. 술 마시다가 우엣것들 욕하면 그대로 유치장으로 끌려가서 3일 구류를 살았지. 아무 이유도 없이! 말 잘 들으면 풀어주고 그랬어. 택시를 타도 말 잘못하면 경찰서 앞에 내려주는거야. 그리고 기사가 날 신고해버리는거지. 지금은 안그러잖아?"
"네"
"자네 키가 몇이지?"
"167입니다"
"교회는 다니나?"
"안 다니는데요"
"자네가 보기에 대통령이 누가 될 것 같은가? 박씨? 그사람이 한게 뭐가 있다고. 아버지 후광이지. 정주영이는 뭘 했었는데, 그 아들은 뭐가 없어."
"네..."
"내 아들이 A렌터카에서 일하는데 이제 대리야. 원래는 79년생인데 호적에는 80년으로 올렸어. 딸은 중학교 선생님이고"
"아...예..."
"아들한테 전화 해봐. 자네 괜찮은 사람 같은데, 친구 하고 끌어주고 그럼 좋지"
"아. 감사합니다"
"지금 테레비에 보면 데모하는 놈들 나오지? 다 능력이 없어서 그래. 능력 있는 애들은 다들 잘 나가잖아. 능력이 없으니 데모나 하는거지"
"뭐...예..."
"취직은 했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그 가수 중에 최씨 그 사람 알아? 국회의원 하더니 이제 안하잖아. 왜냐고? 밥은 먹거든. 근데 김씨 있잖아. 그친구는 연예인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그래. 아마 다시 테레비 나올걸? 내가 장담하는데, 다시 나올거야. 그렇게 두가지나 해먹으면 안되는데"
"아...그렇군요"
"이런 늙은이가 술먹고 주정부리는거 들어주다니. 자네 정말 괜찮은 사람이구만"
"네 감사합니다"
"정말, 딸은 결혼 했으니까 좀 그렇고... 내가 여동생만 있으면 매제 삼고 싶은데 정말 안타깝네"



호기심이 부른 참극이었다.

몇살 연상이랑 소개팅을 해야 하는거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지막 문장이 가정법이라는 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가정하는 것이므로 사실은 문장과 반대로 해석됨.
by snowall 2011. 9. 17. 2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