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구와 맥주를 마실 때 얘기였다. 그냥 사는 이야기 하다가, 성격과 사상과 정체성과 자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사실, 내가 대화하는 스타일은 굉장히 싸가지 없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내가 내뱉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불난집에 기름을 붓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난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었는데,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듯이, 내가 얘기하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다. 생각해보니, 선후배 막론하고 나한테 말버릇 고치라고 다들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 그게 잘 고쳐지진 않는 것 같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수행이 부족한듯 싶다. 이 점에 대해서 나 스스로는 또한 적절한 핑계를 내세우게 되었는데, 이걸 두고 자기합리화라고 하나보다. 물론 이런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한다고 그냥 넘어갈 성격의 단점은 아닌 것 같고, 꼭 고쳐야 할 것 같다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더 잘 말할 수 있을테니까.

난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즉, 어떤 사건이 미치는 미래의 영향을 최대한 나쁘게 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이정도면 염세주의, 패배주의,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런것과는 다르게 나 자신은 상당히 낙천적인 편이다. 내가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이유는, 과연 상황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습관적으로 걱정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최악의 상황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인 발언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난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악이 아닌 지금은 당연히 해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능력과 상황이 허용하는 최악을 바라보고, 그정도까지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만큼 악조건에서 성공한다면 악조건이 아닐때도 성공한다는, 나름대로의 희망과 자신감을 얻고, 그 속에서 나를 발전시켜 나간다. 문제는, 이걸 남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적용하게 되면 아주아주 안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넌 지금 상황이 안좋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근데 넌 이보다 더 안좋을 때도 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이런 상황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물음표까지만 듣고 기분이 나빠져서 더 듣지 않으려고 한다. 말하는 습관을 고쳐서, 앞에는 다 빼고 물음표 뒤의 본론만 얘기하도록 노력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 자신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살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때는 비관적으로 얘기해 버리는 것처럼 들리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내 속에 우울함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속에 있는 우울함의 근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랑 여자친구가 없는 것인데, 뭐 이정도 두가지는 누구나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외에 우울함에 대한 다른 원인이 있다고 해도, 그건 그냥 그런거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자.
나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그 구체적인 사생활은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가진 능력과 그 사람들이 성공한 부분 사이의 연계성에 있어서는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성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성공적인 사람이 있다. 가령,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열심히 학원을 다녀서 토익 점수를 900점을 받았다고 하자. 그럼 난 그 사람을 보고서 "저 사람은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데 공부해서 900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저 사람보다 영어를 못하지도 않고, 능력이 그다지 딸리는 것도 아니니까, 저 사람이 한 만큼만, 그만큼보다 좀 더 많이 공부한다면 나 역시 토익을 900점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꽤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과 나를 비교할 때, 진짜 천재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그런 천재들은 어차피 나랑 경쟁할 사람들이 아니라 괴물급 인재들과 경쟁할 사람이므로 나랑 상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열등감도 없다. 뭐, 이정도면 나름 괜찮은 사고방식 아닌가? 하지만 이 사고방식을 입밖으로 꺼내게 되면, 갑자기 나는 비교하게 되는 거고, 비교의 대상이 된 사람은 상당히 기분나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을 다른 두명을 비교하게 된다면, 상황은 더욱 안좋아진다. 이런 사실로부터 배운 점은, 남을 함부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비교하는 건 그냥 속으로만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할 떄는 미리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준 후에 얘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형이 하는 얘기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라는 거랄까.
부정적인 생각, 우울한 생각, 비관적인 생각, 나쁜 생각, 이런 것들은 머릿속에 항상 돌아다닌다. 왜냐하면, 말했듯이 난 항상 최악을 상상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난 그런 생각들로부터 희망과 자신감을 만들어 낸다.
얼마 전 이공계 장학금 신청했다가 선정되는 걸 거의 확신했는데 떨어진 적이 있었다. 나름 정신적으로 충격좀 먹고, 한시간 정도 울적해 있다가, 곧 회복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뭐, 어쩔거야.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그냥 공부나 하는 거다.

그치만 머릿속에 좀 복잡해지기는 한다. 요점정리가 잘 안되면 난감하기도 하다. 뭐, 그래도, 덕분에 세상 재밌게 살고 있으니까.
by snowall 2007. 4. 28. 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