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고2때였던가.

그땐 세상이 두려웠을 때니까.

친구 Y군과, 구로역이었던가, 아무튼 외부로 노출된 지상역이었다. 거기서 집에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역에, 뻘쭘하니 둘이서 잡담 나누며 서 있는데, 저쪽, 우리 서있는 곳에서 두칸 옆에 벤치에 앉은 아저씨가(아니, 형이라 불러야 옳은가) 우리를 부르더라.

"야, 거기, 일루 좀 와봐라"

물론 우리는 쫄았다. 당연하지. 그 아저씨의 모습은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정장(상, 하의 모두 --;)에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담배 한대 물고 있었으니. 연약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든 겁먹게 마련이다.

"삥뜯는거 아니니까 일단 와봐"

우리가 주춤거리는 것의 원인을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친근하게(?) 얘기하며 우릴 부르는데 가지 않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옆에 앉았다.

우리가 앉자, 그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형이 나이트에서 일하는데, 지금 동생이 사람 하나 죽이고 교도소에 가 있다. 너넨 나나 내 동생처럼 나쁜길로 빠지지 말고 착하게 열심히 살아라"

...라는 취지의 신세한탄을 기차 올 때까지 했다.

우리가 나쁜길로 빠질 것 같은 가출 청소년으로 오해받았던 것일까.
아무튼, 나도 Y군도 그럭저럭 착하게 살고 있다. 그 형의 영향을 별로 받지는 않았지만.

그 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by snowall 2007. 5. 21.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