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고2때였던가.

그땐 세상이 두려웠을 때니까.

친구 Y군과, 구로역이었던가, 아무튼 외부로 노출된 지상역이었다. 거기서 집에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역에, 뻘쭘하니 둘이서 잡담 나누며 서 있는데, 저쪽, 우리 서있는 곳에서 두칸 옆에 벤치에 앉은 아저씨가(아니, 형이라 불러야 옳은가) 우리를 부르더라.

"야, 거기, 일루 좀 와봐라"

물론 우리는 쫄았다. 당연하지. 그 아저씨의 모습은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정장(상, 하의 모두 --;)에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담배 한대 물고 있었으니. 연약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든 겁먹게 마련이다.

"삥뜯는거 아니니까 일단 와봐"

우리가 주춤거리는 것의 원인을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친근하게(?) 얘기하며 우릴 부르는데 가지 않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옆에 앉았다.

우리가 앉자, 그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형이 나이트에서 일하는데, 지금 동생이 사람 하나 죽이고 교도소에 가 있다. 너넨 나나 내 동생처럼 나쁜길로 빠지지 말고 착하게 열심히 살아라"

...라는 취지의 신세한탄을 기차 올 때까지 했다.

우리가 나쁜길로 빠질 것 같은 가출 청소년으로 오해받았던 것일까.
아무튼, 나도 Y군도 그럭저럭 착하게 살고 있다. 그 형의 영향을 별로 받지는 않았지만.

그 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by snowall 2007. 5. 21. 00:22
  • complexifier 2007.05.22 15:00 ADDR EDIT/DEL REPLY

    왠지 슬픈걸..

  •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05.23 11:39 ADDR EDIT/DEL REPLY

    그아저씨의 인생이 슬퍼요

    • snowall 2007.05.23 11:44 신고 EDIT/DEL

      음, 아저씨군요. 스스로를 형이라 지칭하긴 했었으나, 이제는 아저씨가 되었겠군요-_-;
      다음에 볼땐 형이라 불러줘야 싫어하지 않겠죠.
      (결코, 절대 볼 일 없겠지만요)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0.05 23:07 ADDR EDIT/DEL REPLY

    문득 생각난건데, 10대가 술을 마시는 거나 담배를 피는 거나 성생활을 가지는 것 자체는 도덕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잘못된건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내가 저런 애들 싫어한다고 했던 이유는 삥뜯고 애들 괴롭히는 애들의 거의 대다수가 저런 애들이었기 때문에.

    • snowall 2011.10.05 23:11 신고 EDIT/DEL

      뭐... 일단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매우 안좋다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은 없네. 생활에 실제로 적용되는 도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니까.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0.05 23:13 ADDR EDIT/DEL REPLY

    술 마시는건 갓 성인이나 고등학생이나 몸에 나쁜정도가 그렇게 차이있는지 모르겠다.
    담배도 그렇고.
    성생활은, 피임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한 성인들이 과연 누릴 자격이 있는가?

    • snowall 2011.10.05 23:15 신고 EDIT/DEL

      꽤 차이가 있다고 들었어.
      성관계의 경우, 성인이 멍청한건 청소년때 안 가르쳐서 그런거고. 못배운 청소년이나 못배운 성인이나 피임 제대로 못하는 건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