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을 하다보니 "결정론"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아, 참고로 제 부업은 국어사전 편찬입니다. -_-;


"결정론"이라는 말은 정의하기는 쉽죠. 그러나 그 용어의 뜻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결정론이라는 말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아요.


1.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2. 어떤 일은 다른 결과의 원인이다.

3. 따라서, 일단 처음에 어떤 일이 시작되었다면 그 일은 끝없이, 무한한 미래까지, 모두 다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다.

4.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은 과거는 어떤지 몰라도 현재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5. 그러므로 우리 사는 세상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위와 같은 주장을 결정론이라고 합니다.


언 뜻 보기에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다른 동물들은 몰라도, 적어도 인간은 자유 의지라는 것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거든요. 밥을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먹지 않고. 취직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죠. (물론 이 예제를 보신 많은 분들은 이 시점부터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결정론을 믿으실지도 모릅니다만.)



결정론 얘기를 떠올리면,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것이 운세, 점괘 같은 점복술이예요. 10년전, 친구와 함께 찾아간 사주까페에서 거기 주인장님이 저의 손금과 사주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자네는 연애운만 빼고 다 좋아." 라고.


저 는 점과 예언 따위는 믿지 않습니다. 정말이예요. 모든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고, 운과 불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그 이후의 결과는 어떻든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30살이 되어가도록 연애는 텄네요...


제 가 점과 예언을 믿지 않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미래를 예언하는 말을 들었다면,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인간에게 영향을 주어서 예견된 미래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요 즘 영국문학 수업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맥베스"를 강독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또한 예언이 매우 중요하게 나옵니다. 맥베스는 세 마녀가 지나가다가 던진 "넌 왕이 될거야!"라는 예언을 철썩같이 믿고 일을 저질러 버리죠. 그래서 왕이 되긴 되었는데, 왕이 되고나서 결국은 심리적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고 맙니다.


아무튼간에 맥베스의 반란으로 예언은 실현되었지만, 만약 맥베스가 일을 저지르지 않고 쭉 기다렸다면 늦더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죠. 


이런 종류의 예언은 "자기 실현적 예언" 이라고 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elf-fulfilling_prophecy

예언이 그냥 그렇게 될 것이다 수준의 약한 의미를 넘어서, 마치 그렇게 되는 것이 절대 법칙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예언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강제로라도 예언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죠.


자 기 실현적 예언은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여러가지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운동 선수들이 자기암시를 걸어서 좋은 성적을 낸다거나, 가짜 약을 먹더라도 진짜 약이라고 믿고 병이 나을거라고 믿은 환자가 실제로 병이 낫는다거나. 그러나 부정적으로 사용된다면 맥베스의 예도 있고, 종말론자들의 집단 자살같은 비극도 일어나죠.


그리고 "꿈꾸는 다락방"이나 "시크릿"같은 책에서는 자기 실현적 예언을 무슨 맥가이버 칼 처럼 포장하고 있기도 하죠. 틀리진 않지만, 맞다고 스스로가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증명하지 않는 한 증명할 수 없는 예언들이죠.



이 런 생각을 해 봐요.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짜장면을 먹기로 결정한 것이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원인으로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또는, 짜장면을 먹기로 한다는 사실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번엔 짬뽕을 먹기로 선택하는 것 조차도 결정되어 있다고. 게다가 여기까지 눈치챈 후 볶음밥을 시켜먹기로 하는 것 또한 이미 엄격한 인과법칙에 따라 내정된 일이라고.


당신은 자유로우십니까?


by snowall 2012. 4. 20.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