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빨갛다 님이 이전에 댓글 달았던 내용 중,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있다는, 즉 심신이원론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고활동의 교환뿐만이 아닌, 정신세계 전체에 대한 혼재된 상태를 상상했었기 때문에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쉬운 문제는 아니므로 일단은 여기서는 다루지 않고 어물쩡 넘어갈 생각이다. 다시 말해, 자아가 뇌 안에 있는가 없는가, 자아는 뇌의 활동 그 자체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상위의 어떤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는 일단 덮어두고, 지극히 기계론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법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 기술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가정하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자. 사람 몸에는 손에서 뇌로 가는 감각 신경이 있다. 어떤 사람의 팔뚝을 지나가는 신경 줄기를 따내서, 마치 전선 잇듯이 이어붙인 다음, 이 "전선"을 다른 사람의 팔뚝의 같은 부위에 접속한다고 가정하자. 이 전선이 끊어지지 않는 한 어떤 사람이 손에서 느끼는 감각을 접속받은 사람이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이 없다.
이번엔 이 실험을 척수에 대해서 해 본다고 하자. 어떤 사람의 척수 아래에서 온 신호를 따내서, 다른 사람의 척수 위로 신호를 넣어준다면, 이 사람은 저쪽 몸에서 온 신경 신호를 마치 자신의 몸인 것 처럼, 뭔가 어색하지만 느낄 수 있다. 만약, 척수 위에서부터 아래로 가는 운동신호를 전송한다면 멀리 있는 몸이라도 자신의 몸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좌뇌와 우뇌는 뇌량이라는 조직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뇌량은 마치 네트워크 허브(=>공유기) 같은 존재인데, 자세한 설명은 뇌 전문가에게 듣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냥 좌뇌와 우뇌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중간 계층이라고 하자. 뇌량이 손상되거나, 또는 치료 목적으로 절제한 경우, 그 사람은 좌뇌와 우뇌가 따로 놀게 된다. 즉, 왼쪽으로 본 어떤 사실을 오른쪽 뇌가 말로 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사례를 살펴볼 때, 인간의 인식 과정에는 "연결"이라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뇌의 어느 한 일부분만을 살펴본다면 아무리 살펴보아도 정신, 마음, 자아,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뇌 전체를 살펴본다면 그제서야 실제로 살아있는, 생각하는 어떤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방금 알아보았듯, 뇌량에 의해서 좌뇌와 우뇌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양쪽 뇌가 협동하여 몸을 조종할 수 있다. 또한, 두개의 뇌는, 알다시피, 그리고 느끼고 있다시피, 하나의 인격(정신, 자아, 심리, 뭐 그런 것들)을 구성한다. 그럼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의 좌뇌를 서로 바꾸어 이식한다면? 즉, 이 사람의 좌뇌를 저 사람의 좌뇌와 바꾸고 뇌량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윤리적으로 명백히 문제가 있는 실험이고, 기법상으로도 매우 곤란한 수술이기 때문에 실제로 해 볼 수는 없겠지만 상상해 볼 수는 있다. 과연 그렇게 재조합된 뇌는 서로를, 또는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까? 


인터넷에 떠도는 뇌의 역할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 http://2proo.net/950 )
좌 뇌는 언어적 기능을 잘 하고, 언어로 기억한다고 한다. 우뇌는 감각적이고 비언어적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그럼, A의 좌뇌에 B의 우뇌를 합친다면, 일단 기억은 둘 다 반반씩 갖고 있을 것인데, 가령 B가 경험한 일들을 A의 사투리로 말할 것이다. 뇌량에 의해서 양쪽의 뇌가 서로 정보교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자기가 A였던 기억도 있고 B였던 기억도 있는, 둘 다 생생한 실재로 느껴지는 인간이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팔을 지나가는 신경에 마취가 되어 있는 경우, 나의 팔은 내 몸에 붙어는 있지만 나의 팔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눈에는 보이지만 움직일 수도 없고 감각도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 상태에서 수술을 하게 된다. 물론 대체로 큰 수술은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에 자기 몸에 대한 수술을 자신이 직접 보면서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자신의 몸을 결정하는 것은 물리적인 연결상태가 아니라 감각과 조작 가능성이다. 즉, 감각적으로 느껴져야 하고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을 통틀어 앞에서 말한 "연결"이란 이런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느껴지고 조작할 수 있다면 몸이 굳이 한개만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러개의 몸을 동시에 인식하며 경험하고 뜻대로 조작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몸이 1개이기 때문에 몸이 여러개가 되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편견일 뿐, 그 본인(또는 본인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인간은 손이 2개 밖에 없기 때문에, 손이 4개가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곤충들은 그런 상황이 매우 자연스럽고, 심지어 거미는 8개나 되는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만약 인간에게 처음부터 손이 4개였다면 아주 당연하게 4개를 모두 사용해서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키보드에 지금보다 단추 수가 두배는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200개쯤?

몸이 여러개 있는 상황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지만, 이미 그런 여러개의 몸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또는 어떤 적당한 수단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경우라면, 작업 효율이 2배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여친은 없겠...


이 제, 맨 처음의 논의로 되돌아가자. 나의 복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자.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랑 똑같이 생긴 인간이 하나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논의한 적절한 시술을 해서 몸 두개를 동시에 나의 몸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하자. 두 몸은 각각 뇌를 갖고 있지만, 원격 통신장치를 사용해서 모든 기억과 사고를 공유하고, 심지어 자신의 뇌가 두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원본"이었던 몸과 "사본"이었던 몸 중, 어느 한쪽이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절단"에 가까울 것이다. 즉, 아프긴 하겠지만 사망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계속해서 복제 인간을 만들고 자신과 동기화 시킴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복제인간을 만들었으나 위와 같은 기술이 없어서 복제 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하자. 복제인간에게는 나의 모든 기억과 사고방식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나와 복제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도 느낄 수 없다고 하자. 이 경우, 원본이 죽든 사본이 죽든 타인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원본도, 사본도, 각자의 자아를 가진 독립된 개체로서 살아가게 되므로 사본이 있다고 해서 원본이 죽을 수는 없다. 


by snowall 2012. 6. 25. 02:29
  • 꼼지락 2012.06.30 16:31 ADDR EDIT/DEL REPLY

    글을 읽다보니 마치 하나의'사회'를 연상케 하네요. 하나의 사회구성원 개인이 죽더라도 사회 자체는 와해되지 않으며 사회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는 지속적으로 유통되니까요.

    • snowall 2012.06.30 18:01 신고 EDIT/DEL

      그렇긴 하죠. "나"의 경계를 어디서 잡느냐의 문제예요.
      그러고보니 예전에지식을 형태로 남기는 것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