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과 CPT대칭성에 관한 이야기는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한학기 수업 분량이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고서, 이 답글을 읽고나서 별다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결코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두며 이 글을 읽기 바랍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입자의 파동함수는 적당한 경계조건을 가질 때 양자화되어야만 합니다. 양자화라는 뜻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냥 적당한 정수가 있으면 함수 전체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각각의 정수에 해당하는 함수가 있어서 입자에 대한 성질을 알고 싶으면 입자가 어떤 양자 수를 갖고 있는지만 알아내면 된다는 겁니다. 아무튼 중요한건 "정수로 딱 떨어진다"는 겁니다. 1,2,3...등등에 해당하는 것들이 모두 있습니다.

양자화가 이루어진다는 증거는 많이 있는데, 그중 각운동량 양자화가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양자화 조건입니다. 각운동량은 물론 얼마나 회전하고 있느냐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는 숫자입니다. 각운동량이 양자화 되어 있다는 얘기는, 양자화라는 말의 의미에 의해서, 각운동량이 정해진 값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확히는, 각운동량은 플랑크 상수의 정수배에 해당하는 값만이 가능합니다. 지금 얘기하고 있는 각운동량은 전자가 핵 주변을 돈다고 생각할때의 각운동량입니다. 실제로 전자가 핵 주변을 돌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운동량이라는 값은 가질 수 있습니다.

Stern과 Gerlach의 실험에 의해, 전자들이 같은 상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개의 서로 다른 구별할 수 있는 각운동량으로 나누어 진다는 사실이 발견된 이후,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양자역학이 틀린거 아냐?"라는 의심을 가졌지만, 아무튼 이런 경우에 물리학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은 양자역학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숫자를 도입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스핀"이라는 겁니다.

사실, 전자가 2개 이상인 경우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보면 알겠지만(실제로 푸는건 무진장 어렵습니다) 모든 전자는 전부 "완벽하게" 같습니다. 이 말은, 원자 안에 있는 전자에 1번부터 n번까지 모두 번호를 붙여놓고서, 아무거나 두개를 골라서 바꿔도 원자가 가진 특성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원자와 전자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은 전부 파동함수를 이용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를 바꿔도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파동함수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Exchange symmetr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실제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보면, 그냥 풀게 되면 전자의 교환에 대해서 부호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파동함수(1번,2번)은 파동함수(2번,1번)과 앞에 붙어있는 부호가 반대로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인데, 파동함수의 부호가 바뀌면 원자와 전자들의 특성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논리가 맞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전자의 교환에 대해서 부호를 다시 바꿔주는 "무언가"를 파동함수에 곱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도입된 것이 다시 "스핀"입니다.

상대론이 끼어들지 않은, 비 상대론적 양자역학에서는 이정도로 얘기가 끝나게 됩니다. 사실, 전자는 교환에 대해서 부호가 바뀌기 때문에 같은 상태에 전자가 2개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즉, 상태 하나에 반드시 전자는 1개만 들어가야 합니다. (왜그렇게 될까요??)

하지만 여기서, 교환에 대해서 부호가 바뀌지 않는 입자가 있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보즈&아인슈타인과 페르미&디락에 의해서 유도되었습니다. 보즈는 교환에 대해서 부호가 바뀌지 않는 입자가 있다면 그 입자는 한 상태에 여러개가 들어가더라도 무방하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리고 온도가 충분히 낮아지게 되면 모든 입자가 바닥 상태로 확 몰려가게 된다는 걸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즈-아인슈타인 응축(BEC)현상입니다. 물론 이걸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지는 기억이 안나는군요...)

이런식으로 교환에 대해서 부호가 바뀌지 않는 입자를 보존(Boson) 입자라고 합니다. 보존 입자들은 그 갯수가 보존(conserved)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페르미와 디락은 교환에 대해서 부호가 바뀌는 입자에 대한 통계역학을 만들었는데, 이런 입자들을 페르미온(Fermion)이라고 부릅니다. 왜 디락콘(Diracon)이 아닌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무튼, 페르미온들은 같은 상태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응축 현상같은건 결코 일어날 리가 없죠. 페르미온들이 같은 상태에 들어갈 수 없다는 원리를 파울리의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이라고 부릅니다.

스핀에 대해 여러가지 얘기들을 늘어놓았는데요, 이제 스핀의 본질에 대한 얘기를 할 차례가 되었군요. 스핀의 본질은 "회전"이 아닙니다. 여러 교양 과학 서적에서 쉬운 이해를 하기 위해서 스핀 1/2인 입자들을 두바퀴 회전해야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완전히 잘못된 겁니다.

스핀은 정말로 각운동량에 해당하는 양이긴 합니다. 마치 스핀을 가진 입자가 실제로 자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짜 각운동량"입니다. 문제는 그 입자가 정말로 자전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자전하고 있다고 설명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각운동량을 갖고 있다고 하면 모든 것이 잘 설명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죠. 그래서 스핀은 내재적 각운동량(Intrinsic spin angular momentum)이라고 부릅니다.

각운동량은 아무튼 "회전 축"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스핀이 실제 회전이 아니라고 해도 회전축에 해당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여러가지 재미난 일들이 발생합니다.

양자역학을 좀 더 확장해서 상대론적인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스핀이 단순히 스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헬리시티(Helicity)라고 부르는 좀 더 본질적인 양을 생각해야 합니다. 헬리시티라는 개념은 스핀이 이동 방향에 대해서 같은 방향인지 반대 방향인지를 말하는 값입니다. 양자역학에서의 스핀은 말 그대로 "양자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방향을 가질 수 있는게 아니라 정해진 값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값만 가질 수 있는데, 그게 정해져있기만 하면 되고 실제로 어떤 값이냐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우리 맘대로 그 정해진 값을 잘 정하면 물리학이 굉장히 편해집니다. (무진장 이상한 말이죠? 정해져있다고 해놓고서 우리 맘대로 정해도 상관 없다고 하니까 -_-; 이것은 x=x라는 항등식에 아무거나 대입해도 상관 없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적당히 두 방향을 정해주게 되는데, 가장 편한 방향이 입자가 움직이는 방향과 같은 방향하고 입자가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방향이 되겠죠. 그리고 이 방향과 양 손을 엄지를 펴고 주먹을 쥔 방향과 연관지어서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를 결정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입자는 전부 왼손잡이입니다. (우주가 좌파다...뭐 이런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이제, 드디어 C, P, T대칭성 얘기가 등장합니다. C는 Charge Conjugation이고, 전하 공액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별건 아니고, 파동함수는 원래 복소수 함수가 될 수 있는데, 이 복소수 함수의 켤레 복소수 함수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주 재미있게도, 전하에 해당하는 값들이 부호가 바뀌게 됩니다. 전자기적인 전하가 원래 음수라면 양수로, 원래 양수라면 음수로 바뀌게 되죠. 이것은 전자기적인 전하뿐만이 아니라 다른 "전하량"에 해당하는 것들은 전부 바뀌게 됩니다.

P는 Parity conversion인가, 아무튼 패리티 반전이라고 합니다. 또는 공간 반전이라고도 하죠. 이것은 거울 대칭성인데, 시공간의 4차원 중에서, 시간을 제외한 공간좌표의 부호를 모두 바꿔주는 겁니다. 즉 x는 -x로 바꾸는 등의 조작을 해 주는 거죠. 이렇게 하면 단순히 공간이 바뀌는게 아니라 운동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T는 Time reversal입니다. 시간 역전이라고 하는데, 시간 부분의 부호를 바꿔줍니다. 이렇게 하면 미래로 가던 입자는 과거로, 과거로 가던 입자는 미래로 가게 되겠죠.

사실, 파동함수를 잘 보면 이런것들을 바꾼다고해서 파동함수가 별로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이 대칭성들은 완벽하다고 믿고 있었죠. 하지만 C에 대해서 대칭성이 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즉, 어떤 입자와 그 입자의 반입자가 나타내는 행동 양상이 달라지는 거죠. 이건 물리학계에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물리학자들은 항상 어떤 대칭성이 잘 나타나는 것만 봐 왔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우주의 대칭성이 깨질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하지만 곧, C는 보존이 안되지만 C와 P를 동시에 작용하면 물리학이 별로 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만, CP대칭성도 곧 깨지게 됩니다. CP대칭성이 깨지는건 우리 우주의 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에 잠시 후에 설명하죠. 아무튼, 물리학자들의 마지막 보루는 세가지 대칭성을 모두 만족하는 CPT대칭성은 완벽하다고 믿고 있는 건데, 사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이 여기서 끝날리가 없죠. CPT대칭성은 완벽하다고 다들 믿고는 있지만, 깨진다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없을리가 없겠죠. 그래서 CPT대칭성이 깨진다고 가정하고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탐구하는 이론 물리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중 놀라운 결론은 CPT대칭성이 깨지는 것이 로렌츠 불변성을 깨는 것과 동치라는 얘기입니다. 로렌츠 불변성은 상대성 이론에서 말하는 "인과율"이라는 건데, 이게 깨진다는 건 곧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물리학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학문과 철학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습니다.

물론 CPT대칭성 붕괴는 아직 관측되거나 증명되지는 않았고, 이론적 가설에 불과합니다. (물론 계속해서 측정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 효과는 0에 엄청 가깝다고 합니다)

CP대칭성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가 뭐냐하면, 바리온 생성과 렙톤 생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들(별, 은하, 지구, 사람 등등)은 전부 페르미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페르미온에는 두가지 중요한 분류가 있는데, 하나는 쿼크이고 다른 하나는 렙톤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쿼크가 모여서 만들어진 입자를 바리온Baryon이라고 부릅니다. 그중 두개가 모인건 중간자Meson, 세개가 모인건 강입자Hadron이라고 부르죠. 아무튼, 우리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은 바리온과 렙톤으로 이루저여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로부터 어떤 입자가 만들어질 때 반드시 그 입자의 반입자도 같이 생성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주가 처음 만들어지고서 얼마 후에, 대체 우리를 이루고 있는 반입자는 어디서 온걸까? 하는 질문이 생기겠죠. 여기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입자와 반입자는 항상 그 수가 같아야 하고, 얘들은 만나기만 하면 모두 에너지로 전환되어 빛이 되기 때문에 우리들은 존재할 수 없는데, 다들 알다시피 우리들은 지금 다들 살아있습니다. 즉, 우리의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겁니다. 바로 이 문제를 CP대칭성의 붕괴가 해결합니다. 우리가 지금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주 초기에 CP대칭성이 깨져 있었어야만 한다는 거죠.

그리고 바리온을 만들어내는 CP대칭성의 붕괴만으로는 그 효과가 작아서 현재 존재하는 바리온들의 양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고 하여, 렙톤의 CP대칭성 붕괴로부터 바리온이 생성되었다고 하는 가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쯤 되면 20세기 후반의 물리학 얘기가 됩니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얘기가 됩니다. 쓰고나니까, 엄청나게 많이 요약했군요.

by snowall 2006. 8. 29.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