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삽질했던 국어사전 집필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한두개 정도만 더 하면 끝날 것 같다. 내 이름도 집필진에 올라간다고 하니, 열심히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충 했으면 왠지 부끄러웠을테니까. 10개월간 대략 3000개 정도를 했으니, 하루 10개씩 꼬박꼬박 한 셈이다. 물론 실제로는 마지막 2개월 사이에 1000개 넘게 했다. ㅋㅋ


1.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국어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다른 분야의 용어는 모르겠으나, 물리 관련 용어들 집필하면서 발견한 수많은 오류들은 제대로 된 용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단어는 완전히 틀린 것도 있고, 어떤 단어는 다른 사전에서 베껴온 것도 있고, 어떤 단어는 무관한 다른 단어의 뜻풀이를 가져온 것도 있었다. 예전에 집필했던 분들의 노력과 수고는 정말 대단하였지만 급해서 대충 집필한 몇몇 뜻풀이에서 그 노력이 퇴색되지는 말아야겠다.

물론 나도 급하게 쓴 것이 있긴 하지만, 검색도 하고 공부도 해서 어려울 순 있어도 틀린 뜻풀이가 들어가지는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였다. 그리고 우리 교수님께서도 깐깐하신 분이라 내가 실수한 것이 있어도 다 잡아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2.

전공자와 일반인 사이의 높은 벽을 느꼈다. 가령,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의 경우, 국어팀에서 교열되어 온 것을 다시 확인해보니 '중성 미자'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었다. 물론 중성미자는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용어이고 교열하기 전에 찾아보았다면 그렇게 고치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일반인이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문화를 탓하고 싶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과학에 대해 별 관심도 없는 것이고, 전공이 아니면 잘 모른다. 목표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전문용어 사전이었는데, 목적이 잘 달성되었을지 모르겠다.


3.

우리말 제대로 쓰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고에너지의 전자의 속도의 방향의 한 방향에 대한 성분의 크기] 처럼 '~의'로 이어지는 형태를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데 영어로 되어 있는 뜻풀이를 가져오다 보면 어느새 그런 표현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된 용어를 가능하면 우리말로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자어를 쓰고 있고, 우리말 용어는 오히려 학계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보니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나도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데 국어 교육이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해 배우는 언어 영역의 일부가 되어버린 후배들은 어떨지 걱정스럽다. 한국어가 국가 공식 언어인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교육보다 한국어, 한글 교육이 더 중요하다. 자녀들에게 조기영어교육을 시키는 부모님 중에 영어가 왜 중요하고 한국어가 왜 중요한지 비교 분석한 후 심각하게 고민하여 시키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4.

덕분에 공부를 매우 많이 할 수 있었다. 고체, 광학, 플라스마 분야의 용어들을 많이 찾아보았고, 뜻풀이를 쉽게 쓰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빠르게 공부해야만 했다. 역시 나에게는 세상에서 물리학 공부가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제 요금 정산이 남았구나.

by snowall 2012. 12. 24.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