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임꺽정을 읽고 있다. 드디어 9권을 읽고 있으니, 오래 걸리는 셈이다.

8권까지 읽은 감상은, 당시의 시대상이 어째 현대와 꼭 같을 수 있는지, 어찌 그리 흡사한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 신분 차별에 따른 신분증 위조와 현재의 학력위조는 그 양상이 비슷하다.
알다시피 임꺽정은 백정의 자식으로, 백정 계급은 당시 천민중에서도 최하위층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략 3D업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정도 되겠다.[각주:1] 그런데 임꺽정은 힘이 대단히 세서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잘나빠진 양반놈이 전공도 없으면서 자기를 무시하는게 꼴보기 싫어 한소리 했다가 죽을뻔하는 경험을 한다. 물론 그 이전부터 그다지 양반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그 과정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난 뒤 도적의 길을 걷게 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외국 유명 대학에 유학 다녀왔다고 실력도 없으면서 취직되고, 그리고 정작 실력있는 사람들을 자기보다 돈 없다고 무시하는 일은 더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임꺽정을 보다 보면 후반부 화적편에서 임꺽정이 서울 가서 부인을 셋이나 만드는 행각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양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게 된다. 야밤에 돌아다닐 때는 순라꾼이 붙잡지만, 높으신 분 심부름 간다면서 위조한 명패를 보여주면 무사히 통과한다.
임꺽정과 이봉학이 신분을 위장하여 서울 서 임금의 명을 받고 내려온 도사와 그 수행꾼이라고 하자 임꺽정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쫒아 다니던 사또가 그냥 어떻게 비벼보려고 갖은 뇌물과 접대를 쓴다. 그리고 막판에 도망치면서 신분을 밝히자 아주 그냥 죽을라고 하더라.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삼군을 통제할 장군이 되었을 인물이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나 도적이 되었다. 이것은 구조적 문제인가 개인적 문제인가.
뿐만 아니라 청석골에서 두령을 맡고 있는 여러 인물들도 다들 특출난 재주가 있어 인정받았으나, 세상의 부조리에 버림받고 악과 깡만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도적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관청을 습격한건 잘한 일이 아니고, 용서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사회인가 개인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칭찬을 들으며 살고 싶어 한다. 잘했다는 소리, 성공했다는 소리, 능력있다는 소리,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남이 잘 되는게 배아픈게 아니라, 나만 성공 못하는게 아프다. 저 다른 사람들은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먹고 살고, 성공도 하고, 돈도 잘 버는것 같은데 난 뼈빠지게 고생하고 있는 힘껏 노력해도 이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면 이룰 거라고 그랬는데, 아무리 해도 안된다. 그러다보니 좀 더 빠른 길을 찾게 되고 편법도 쓰고 그러는 거다.

세상이 당신과 맞지 않는 경우 두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세상을 다 바꾸든가 당신을 다 바꾸는 것. 둘 다 결코 쉽지 않지만, 둘 중 어느 하나를 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바뀌지 못했다면 성공 역시 본질적으로 성공한 것이 아닐 것이다.

  1. 3D업종 종사자가 천민의 최하위층이라는 말이 아니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07. 8. 19. 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