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

어제 친구가 자취방에 찾아와서 긴 얘기를 해줬다. 요점은 내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니까 쓴소리 해주는 건 정말 고맙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교수님이 나를 보는 시각, 후배들이 나를 보는 시각,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나를 직접 대면할 때와 나를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 다르겠지. 뒷담화가 내 귀에 들려오니 나로서는 사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져 있다. 그가 내게 물어봤다. 과학자는 왜 되고 싶은 거냐고. 그에 대해서 내가 대답하기를, "재밌잖아" 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행동을 고쳐야 한다고 한다. 사실 대인관계 잘 풀어 나가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난 그냥 가식적이어도 다른 사람들이랑 대충 인사하면서 지내면 된다.
사람들은 가식적인걸 싫어하면서 내게 가식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가식적인걸 싫어하길래 내 마음을 그대로 내놓고 다녔더니 다들 그런식으로 살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다 감추고 조금씩 위장하고 다니면 그걸 가식이라 부른다. 그럼 결국 가식이 아니면서 그 사람들 맞춰주려면 나를 바꿔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사람의 마음에 관한 문제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깨우침의 문제지. 내 귀가 말을 들어 처 먹어야 내가 바뀔거 아닌가.
내가 초, 중, 고등학교의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을 대학교 와서, 사회에 나와서 드러내서는 안되겠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 필요는 없는거잖아. 아는 얘기야. 근데 그게 쉽냐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한 얘기도 비수가 되어 가슴에 처박히고, 고민없이 툭 튀어나온 얘기는 사람 마음 속을 후벼파는데. 물론 내가 내 상처를 고쳐야겠지. 그래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고 살 테니까. 나는 억울하다고. 이런 주장도 변명이지만. 세상에 상처 안받고 사는 사람이 어딨겠나. 그런데 나만 어긋나서 남들에게 상처 주면서 사는건 이상하다는 거다. 그래. 이상하지. 근데 그건 나잖아. 내가 다른 사람과 같아야 할 이유도 없고 상황이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는 얘기가 내가 권위적이라는 점이다. 이건 사실 나도 문제라고 느끼고 있다. 내가 남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 줄 때, 사실 난 내가 그친구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점에 쾌감을 느끼며 가르쳐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남들에게 대답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그만큼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공부한다. 어쩌면 강박관념인 것 같기도 하고. 좋게만 보면 베푸는 거지만, 그뿐만 아니라 사실 난 내게 질문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질문자는 기분이 나쁘겠지. 내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된 건 중,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에게 받은 영향이 크다. 내가 만난 내 반 친구들은 모두 나한테서 숙제를 베껴갔다. 대학교 와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애들이 내 숙제를 베껴갔다. 별로 그걸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난 별로 힘도 없고, 주먹도 못 쓰는 아이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공부를 좀 잘했기에, 그런 힘좀 쓴다는 애들이 숙제 안해와서 나한테 보여달라고 부탁하면, 기분 좋지 않은가. 그런데서 우월감 느끼면서 숙제 다 보여줬다. 물론 숙제로 성적이 모두 결정되는 것도 아니니까 내 성적은 중상위권 정도를 유지했고. 물론 이런 우월감 느끼는 것들은 아주 유치한 정서이고, 대학교 와서도 그러면 안되고 다 커서도 그러면 안되지. 응, 나는 아직 어리다. 이걸 변명으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나름대로 그동안 고민한, 내 성격이 지금 이런 상황이 된 원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나보다 웃어른인 사람들에게도 이런 알량한 권위적 심리를 내비친다는 것이다. 이건 앞서 얘기한 가식/비가식 문제하고도 맞물린다. 나는 나 자신을 감추는데 굉장히 서투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런 내 모습을 다 받아들여주는 착한 사람만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사람하고만 만날 수 없다. 누구나 다 만나고 다녀야 한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인간 관계가 있고, 끊기 싫어도 끊기는 관계가 있다. 가급적이면 나하고 마음 맞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 친구는 내게 그러지 말고 조금만 마음을 고쳐서 이런저런 사람하고 다 잘 지내면 어떠냐고 묻는다. 그럼 좋지. 좋아. 그런데 조금 고치기기가 왜그리 힘드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본 건데, 난 불분명한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모든걸 다 규정해 버리려는 성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조금 안보이는 정도는 그냥 다니지만 나는 안경을 항상 쓰고 다닌다. 뿌옇게 보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도 작업 내용과 마감 날짜를 딱 정해놓고 그날까지 끝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도 얘기의 요점을 한문장 정도로 정리하고 싶어하고, 하지 않아도 될만한 얘기도 입밖으로 꺼내서 명확히 하고 싶어한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왜 이러고 있겠나. 속으로 담아두지 못하고 답답해서 어떻게든 명문화 시키고 싶으니까 그러는 거지.
사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성공하려면 대인관계도 상당히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건 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별로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나를 맞춰 나가야 과학자도 되고 성공도 하지. 내가 칭찬받기보다는 남을 칭찬해야 하고, 내가 위에 있기보다는 남을 올려놓고, 내게 권위를 돌리기보다 남에게 돌리고. 중고등학교때 반 친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핑계도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나. 느끼고는 있으나, 느끼기만 하는, 그런 거다.
내 성격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나는 화를 못낸다는 것이다. 화가 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수그러든다. 이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는데, 분명한건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내가 화를 낼 것을 기대하고 얘기하는데 내가 화를 내지 않게 되면 상대방이 더욱 화를 내는, 그런 악화되는 상황이 있더라. 그리고 이렇게 화를 내지 않고 화나는 일들을 쌓아두다보면 언젠가 터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홧병이라던가. 또한 스트레스 쌓이는 일을 요새는 스트레스를 기분 좋게 풀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친구는 내게 이런것이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무뎌질 수밖에 없지. 내가 억울한 일들을 하나하나 모두 화내고 살다간 나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언제쯤 내가 원하는 공부만 하고 원하는 사람만 만나고 살 수 있을까. 그 친구는 내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암시하며 나 자신을 고쳐나갈 것을 권유하지만, 그것조차 내게는 이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심은 전해졌으나 내가 이미 지쳤다. 사실은 매일 사람을 만나서 웃고 떠드는게 일은 일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남들이 내게 간섭 안했으면 좋겠다. 난 그냥 재밌는 공부만 하고, 재밌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싶다. 안그런 사람이 없겠지. 그리고 다들 어쩔 수 없이 싫은 일도 하고 싫은 사람도 만나는 거겠지. 그렇다고 내가 그걸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닌데, 포기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짓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난 지금 과학자가 되겠다고 쇼를 하고 있으면 안되지. 빨랑 군대 갔다 와서 회사 들어가야지. 그럼 돈은 많이 벌잖아. 처자식 먹여살릴 수 있잖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지.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이유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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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all 2007. 8. 30.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