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소비자의 수요는 공급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만큼만 공급해서는 남들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제조업체들은 항상 "이건 당신에게 꼭 필요하답니다"라고 광고하여 없던 수요를 만들어 낸다. 좋게 말하면 틈새시장이라고도 하고, 블루오션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TV, 계산기, 컴퓨터, 자동차, 휴대전화 등등, 인간을 위한 편의기구이긴 한데 원래 없어도 사는데는 별 지장 없다. 하지만 공급을 위한 수요를 창출해낸 뒤, 저 물건들은 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나 역시 인터넷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오픈웹 운동이라는 것을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간단히 말하면, 온라인 금융 거래를 운영체제에 상관 없이 가능하게 하자는 운동이고, 현재 http://www.openweb.or.kr 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오픈웹 운동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온라인 결제 시장이 MS윈도우즈 위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ActiveX를 사용하지 않으면 보안이 엉망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과, ActiveX만이 유일한 보안 대책인 것으로 아는 사람과, ActiveX로 밥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과, 시장을 정복하려는 MS의 의지가 대한민국에서 활짝 꽃피워서 일어난 결과이다. MS에서도 예측 못했을 정도의 MS 독점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유명하다.

이러한 일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금융 거래를 위하 사이트가 윈도우즈 전용이어야 하는 이유를 "윈도우즈 이외의 운영체제에 대한 지원은 시장성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아하, 다시말해서 돈이 안되니까 못 만들겠다는 것이로군. 응, 타당한 이유다. 돈이 안되는데 굳이 지원할 필요가 없지. 자본의 목적은 더 큰 자본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따라서 돈이 되지 않는 일을 굳이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모든 은행 사이트는 MS윈도우즈에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윈도우즈에서 돌아가는 인터넷 뱅킹은 이미 모든 수요를 채웠다는 뜻이다. 전문용어로 "레드오션"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쪽 수요는 수수료 장사만으로 쏠쏠한 벌이가 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시장이다. 즉, 한번 크게 투자하여 기반 구조를 닦아두면 그 다음부터는 큰 재투자 없이 계속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지적했듯이, 자본은 항상 이미 있는 수요만으로는 공급량을 모두 소비할 수가 없다. 즉, 레드오션에서 나오는 수익으로는 자본의 욕심을 채울 수가 없다. 따라서 자본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내야만 한다. 눈을 돌려라. 그 시장은 윈도우즈 바깥에 있는 것이니, 윈도우즈가 아닌 운영체제를 지원하게 되면 그쪽 유저들의 눈을 당신에게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에 딱 두개밖에 없는 은행인 A은행과 B은행이 둘 다 윈도우즈에서 인터넷 뱅킹을 지원한다. 한국 국민들은 인터넷 뱅킹을 모두 윈도우즈에서만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윈도우즈가 아닌 운영체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쓰는 사람들보다 많다. 쓰고싶어도 여러가지 문제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A은행이 리눅스와 맥에서의 인터넷 뱅킹을 지원한다고 하자. 그럼 B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사용하던 사람 중에서 리눅스를 쓰고 싶어하던 사람들의 눈을 A은행으로 돌릴 수 있다. 더불어, A은행은 최초로 리눅스/맥의 인터넷 뱅킹을 지원하는 은행이라는 것을 광고할 수 있다. 최소한, 인터넷 뱅킹을 하기 위해서 MS윈도우즈를 사야만 하는 사용자들을 배려한다고 광고할 수 있는 것이다. PC만 있으면 리눅스는 구할 수 있을테니, 추가비용이 들지 않는, 저렴하고 경제적이라는 측면을 부각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A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A은행의 비 윈도우즈 부분의 선점 효과에 의해서 늘어난다면 A은행은 B은행보다 시장 점유율에서 앞서 나갈 수 있게 된다.

물론 A은행이 윈도우즈가 아닌 운영체제를 지원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돈이 아까울 수도 있다. 들인 돈 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아직 지원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고간에 시장은 포화되는 법이다. 윈도우즈 시장이 포화된 이후,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만 만족할 것인가? 그렇기엔 경쟁이 너무 치열할텐데 말이다.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나오는 수익만 바라보다가 다른 은행이 리눅스 시장을, 맥OS시장을 선점해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군다나 이미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교하면 투자해야 할 돈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보여진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윈도우즈가 아닌 운영체제를 위한 시장은 미개척 분야다.
by snowall 2007.10.21 23:00
  • legendre 2007.10.22 00:18 ADDR EDIT/DEL REPLY

    생각해보니 한글로 된 리눅스에서 작동가능한 온라인게임(웹게임 제외)도,
    미개척 분야네요. 이쪽에서 윈도 시장은 거의 포화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 snowall 2007.10.22 01:56 신고 EDIT/DEL

      시장성이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미개척 분야라고 관점을 바꿔야 할텐데 말이죠.

  • 맨큐 2007.10.23 00:00 신고 ADDR EDIT/DEL REPLY

    저도 파이어폭스를 주로 쓰다 보니 익스플로러에서만 잘 돌아가는 싸이트에는 잘 안 가게 되더라구요.
    아직까지는 기업들이 이러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는 듯 합니다. ;;

    • snowall 2007.10.23 00:30 신고 EDIT/DEL

      이건 문제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지입니다. 맨날 혁신을 외치면서 대놓고 보이는 블루 오션을 못보고 있으니, 한심하죠

  • 썰렁맨 2007.11.15 23:54 ADDR EDIT/DEL REPLY

    오픈웹에서 링크타고 왔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고요.
    동감합니다. 의지의 문제죠. 새삼스럽게 웹의 목적 이런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윈도'처럼 되어 있는 국내의 컴퓨터 교육과정도 전면 개편하여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편견없는 인식을 심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snowall 2007.11.16 12:03 신고 EDIT/DEL

      네, 최소한 리눅스/맥/BSD등의 다른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