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증산도 계통의 사람을 만났다. 이쪽 사람들이랑 만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아마 다음번 부터는 세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내게 해준 스토리는 두개의 큰 줄기가 있는데, 하나는 지금이 우주의 가을이니 추수의 때라 추수해야 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상의 업보를 내가 풀어줘야 조상과 집안에 대한 가장 큰 효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상관 없다, 아무리 진지하게 생각해 봐도 신경쓰고 싶지 않다. 귀찮아서 놔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의해 적극적으로 거부하겠다"이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물어둔 떡밥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계속 말을 걸어와서 대략 1시간 정도를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이치를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스스로 공부하는 중이라 아직 깨달음은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치를 알지 못하는데 나한테 가르칠 만큼은 이치를 터득한 것일까? 내가 그냥 인생에 대해 별 고민없이 살아가는 어중이떠중이 정도인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나의 감정과 나의 사상과 나의 철학과 나의 종교를 모르면서 그렇게 밀어붙이기 식으로 내가 잘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나 역시 그 사람에게 성공하는 방법을 두시간동안 강의해줄 수 있다.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이치에 대해서는, 나 역시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있고 인간 본연의 특징과 사회 전반이 굴러가는 현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기에 내가 딱히 남들보다 잘난건 없지만 최소한 남의 얘기를 무작정 믿고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다. 그 사람은 나를 무시하지 않고 얘기한다고 말했지만 얘기하는 내내 자신이 공부를 많이 하고 내가 모르는 뭔가를 자신이 알고 있다는 듯한 식으로 얘기를 했다. 도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강경한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도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자신을 낮추기에 가장 위대하고 자신의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기에 가장 강하다고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이 말하는 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도였다.

뭔가 그럴듯한 얘기를 하고 있기에 들어보려고 했으나, 이야기가 깊이있게 흘러가지 않고 겉돌았다.

본연을 얘기하지 않고 사변적인 것만 얘기해서, 천년전의 중국의 어떤 학자가 우주의 주기를 예측하고 가을이 온다는 것을 예측했다든가, 소빙기와 대빙기는 우주의 주기에 따른 현상이라든가, 업보, 인생, 조상 등등. 조상님 잘 모셔야 내가 잘 된다는 얘기를 계속 했다. 그럼, 내가 나 자신이 잘되기를 포기하면? 그래도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 된다"라는 말의 뜻이 내가 생각하는 뜻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그쪽에서 말하는 "잘 된다"는 뜻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최소한 어떤 맥락에서 말하고 있는지는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계속 내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했다.

내가 바란 것은 깨달음이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들어서 암기한 것을 전달하려고 했다. 결국 그 사람한테 얘기를 듣지 않더라도 내가 책을 읽거나 정보를 찾아보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내게 전혀 소중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 사람은 사람이 지나치다가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 모두 전생의 인연에 의한 것이고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게 인연이었다면 내게도 느낌이 있어서 이 사람이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사실은 지난 8월쯤에 대략 사기를 당했다. 콘도 회원권 1년에 30번 쓸 수 있는 10년짜리 회원권을 무슨 행사에 당첨되어 70만원에 판다고 했는데, 막상 질러놓고 나니까 1년에 한번도 못가게 생겼다. 갈 수도 없고. 명분도 없고 여유도 없고 사실은 관심도 없다. 그런데 그 영업 사원이 내게 했던 얘기가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빌려줘도 충분히 1년에 30번은 채운다고 했다. 사기를 당한건 아무튼 안타깝지만. 뭐, 그 영업 사원이 아주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딱 접었어야 했는데. (썅)

아무튼 스토리의 플롯이 똑같다.

길거리 가는 사람중에 적당한 사람 붙잡아서 : 전화번호부에서 적당한 번호 골라서 행사에 당첨!
이거 하면 집안 전체가 잘돼요 : 이거 회원권 있으면 친구랑 가족이랑 집안사람들 한번씩 다 놀러갈 수 있어요
100만원 : 70만원 = 겁나게 큰돈은 아닌데 그렇다고 만만한 돈도 아니고, 지르자면 지르겠지만 지르고나면 가슴아픈 것.

사실 대부분의 맥락을 지난번에 개벽을 내게 얘기했던 사람에게 자세히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도법"을 전수한다는 것이 뭔지도 안다. 그 내용은 대략 조상님들에게 거하게 제사 한번 올린다는 건데, 이미 우리 집안은 집안 내력 자체가 제사가 조상님을 기리는 의미보다 살아있는 친척들이 얼굴한번 보러 오는 것이다. 가풍이 이런 상황이면 조상님도 저승에서 그다지 제삿상을 기대하고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집안을 돌봐주는 여러 신들에게도 제사를 올린다는데, 제사를 올리지 않더라도 그 신들은 우리 집안을 폭삭 망하게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연에 이치에 따르면, 자연이 하는 일은 순리에 바른 일만 행하고 맞지 않는 일은 오래 행하지 못한다.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쳐도 하루 종일 몰아칠 수는 없고, 날이 가물어도 1년 내내 가물 수는 없는 일이다. 신들이 집안을 아무 이유 없이 망하게 하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다. 제사를 올리지 않았다고 하여 그 죄를 물어 망하게 한다면, 자릿세나 보호세를 상납하지 않았다고 거리의 노점상을 부수는 조직폭력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조상신들이나 집안의 신들이 조직폭력배인가? 그건 아니잖은가. 만약 내가, 또는 가족의 어떤 사람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에 집안이 망한다면 이것은 신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할말 없다.

나 역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남에게 가르칠 정도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by snowall 2007. 11. 11. 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