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괘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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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적인 이해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i/si-new/lee-sang-geo-ul.htm

나는 이상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한다. 끝없는 절망, 남들이 감히 밑바닥이라 부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있는 좌절상태.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좌절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의 산문 "권태"를 읽다보면 정말 아무리 활기찬 사람이라도 읽다보면 권태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암울한 시대이다. 그 누구도 좌절하기 쉬운 시대. 하지만 이상이 표현한 좌절만큼 깊이 절망할 사람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 "거울"에서, 화자는 거울 속의 나를 친근하게 여긴다. 거울속의 나는 타자로서의 자신인데, 남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알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나와 다르다는 것도 안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는 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나 자신과 악수도 하지 않으며 친할 수도 없다. 하지만 거울이 아니면 만나보기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거울에 의해 나는 나 자신과 만져볼 수도 없지만 말이다.

참 딱한 자신이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연민과 사랑이 없다면 이 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그냥 우울하고 절망에 관한 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왜? 나 자신이 어디있는지 알거든. 나를 찾아 헤메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거울 앞에서 만나볼 수 있거든.
by snowall 2007. 11. 11.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