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참 좋다.

뭐가 좋냐하면, 일단 때리고 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경찰 수사를 하는데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A라는 사람이 용의자라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그 사람을 조사하여 처벌하게 된다. 근데 A가 용의자이긴 했으나 조사 결과 무죄인 것이 판명되었다면, 그동안 A가 받은 여러가지 피해는 어디서 구제받아야 하는 것일까? 단, 이 경우 절차상 모든 조사는 적법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오해받을만한 짓을 한 A가 오해받을만한 짓을 했으니까 참고 감수하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가령 얼굴이 험악하게 생겼다고 오해받은 거라면 얼굴 뜯어고칠 돈은 한푼도 안주면서 남의 얼굴보고 뭐라고 하는 것 같으니 그것도 공평하지는 않다.

A가 죄가 있는 경우와 죄가 없는 경우, 경찰이 A를 조사하는 경우와 조사하지 않는경우를 따져보면 4가지 경우로 나눠진다.
  1. A가 죄가 있고 경찰이 A를 조사한다.
  2. A가 죄가 없고 경찰이 A를 조사한다.
  3. A가 죄가 있고 경찰이 A를 조사하지 않는다.
  4. A가 죄가 없고 경찰이 A를 조사하지 않는다.
위의 네가지 경우 중에서, 1번과 4번은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2번과 3번인데, 2번과 3번 중에서 어느쪽이 더 나쁜 경우일까? 말할것도 없이 3번이 더 나쁜 경우다. 단, 이 주장이 2번이 나쁘지 않다는 주장은 아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2번보다 3번이 더 나쁜 경우에 해당되므로 일단 최악에 해당하는 3번을 막기 위해서 A를 조사해야만 한다. 여기까지는 판단에 별다른 하자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2번의 경우에 A가 얻게 되는 실제적인 피해는 보상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물론, 아주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죄가 없는 사람이 오해를 받을 필요도 없고, 오해를 받았다고 해서 죄가 없는데 처벌 받을 일도 없으며, 경찰서에 잡혀가서 몇가지 조사를 받고 무죄로 판명받아 풀려났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 오면 죄가 있건 없건 무조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안좋아진다. 경찰 역시 아무런 근거 없이 사람을 잡아다가 조사하지는 않겠지만, 조사를 받고 온 사람이 유형, 무형의 손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사건 자체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조사를 받는다면 정말 억울할 것이다.

대책은 아직 모르겠다.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서, 경찰에서 무죄로 판단했다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 많아져야겠지만 경찰이라는 조직 자체를 별로 믿지 않는 사람들인지라 그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경찰서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 근거도 없다. 참 어려운 문제다.

이 글의 아이디어는

오늘은 네이버에서 전화오네요...

를 읽고서 떠올랐다. 네이버를 경찰로 놓고, 위 글의 주인공을 용의자 A로 두면 내가 글에서 얘기한 것과 비슷한 경우가 된다.

이런 문제에 관하여, 과연 대책은 존재할 수 있을까? 즉, 위의 4가지 경우에서 3번을 막기 위해 2번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2번에서 발생하는 문제 조차도 피해갈 수 있는 대책은 존재하는가?

일단, 나는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 현명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by snowall 2007. 12. 12.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