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이제 더이상 한국에서 배울것이 없노라 자부하는 마당에 웬 등록금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년 등록금은 올라가고, 아예 10%를 올린 다음에 2%를 깎아서 결국 8%를 올리는 등록금 인상과 등록금 투쟁은 올해에도 모든 대학에서 계속되겠지.

등록금은 왜 올라갈까? 왜 올려야 할까? 왜 올리고 싶을까? 그런데 학생들은 그러고도 왜 다닐까?

대학 등록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싸다든가, 다른 학교에 비해서 싸다든가, 그런건 답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돈을 내는 입장에서는 등록금은 큰 돈이라는 것이 사실이고 마련하려면 어쨌든 부담스러운 돈이다.

등록금 인상 요인은 물가인상, 물가인상에 따른 인건비 인상, 학생 복지 확충, 미래를 위한 적립, 캠퍼스 개선, 건물의 증축, 신축, 강의실 보수작업 등등에 대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그 외에도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주 많겠지만 뭐 다 그렇다고 해 두자. 그럼 이런 돈은 학생이 내야 하나? 물론 학생이 내는 것이 맞다고 해 두자. 어쨌든 수업을 듣는 것도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것도 학생이니까. 그럼, 이런 돈은 학생만 내야 하나? 굳이 그래야 할 것은 없다. 학생에게 투자되는 돈이라 해서 학생이 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다른 사람이 내줘도 된다. 국가에서 보조를 해줄 수도 있고, 대학을 소유한 재단에서 내줄 수도 있다.

어쨌든 보자. 등록금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그래도 학생들이 등록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인가? 올라간 등록금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등록금은 올라간다. 만약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학생들이 모두 제적당해 버리면 이 상태에서는 손해보는 쪽이 학교다. 죄수의 딜레마가 떠오른다.

학생들이 실제로 단결해서 아무도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면 학교는 등록금을 학생들이 낼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춰야만 한다. 그것이 등록금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것 보다는 일부라도 받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일부만 단결한다면, 학교는 그 일부를 잘라내더라도 나머지의 등록금을 받는 것이 더 유리하다. 따라서 학교는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에 붙어 있어야만 하고 반드시 졸업장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학력과 성적으로 판정되어 버리는 졸업 후의 취직길을[각주:1] 막아버릴 수 없는 학생들은 약자의 입장이 된다. 좋든 싫든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도저히 낼 수 없는 등록금에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된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아마 학교를 뛰쳐나갈 학생들은 꽤 많을 것이다.

불행의 확대 재생산이 된다.
취업난이 가속화 되어가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하고, 그럼 어떻게든 등록금은 내야 하고, 대학이 등록금을 올려도 내긴 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졸업하고 취직한다. 등록금 대출이 있으면 갚아야 할 것이고, 부모가 대신 내줬다면 그만큼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필요도 있다. 그럼 정작 자신을 위해 돈을 모으는 시기는 훌쩍 넘어간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자식 생기고. 다시 시간이 지나면, 이번엔 훨씬 비싸진 등록금에 그 자식이 대학에 다니게 될 것이다. 이 얘기에 비약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꼭 그러라는 법도 없고, 반드시 그렇다는 법도 없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해결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학력에 대한 편견 없이, 순수하게 자기 회사에 도움이 될 사람을 뽑는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아주 잘하는 기술이 하나 있어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채용되어 일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건 그냥 혼자만의 꿈일까?

어차피 실력과 기술이 없는 회사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경제의 법칙이다. 자신의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필요한 능력이 아닌 그 외의 요소를 보고 평가하여 놓치는 회사는, 바로 그 인재를 뽑아간 다른 회사에게 반드시 패배할 것이다. 이것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죄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사소한 차이에서 승패가 갈릴 것이고, 이러한 회사들이 살아남게 되면 대학이 더이상 취업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닌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그럼 그때에는 등록금 역시 적정 수준에서 결정되어 등록금 투쟁이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물론, 그런 세상에서는 고3들이 경험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도 잊혀진 단어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잘 버텨내기를 바랄 뿐이다. 죽지 않고서.
  1. 실제로 그렇다 하지 않다고 해도 사회 경험이 적은 대학생들은 실제로 어떤지 전혀 모르고 그저 졸업장과 성적만이 자신의 살 길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본문으로]
by snowall 2008. 3. 2.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