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시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호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by snowall 2006.11.09 19:20
  • radium 2011.10.05 22:43 신고 ADDR EDIT/DEL REPLY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 radium 2011.10.05 22:49 신고 ADDR EDIT/DEL REPLY

    최승호 - 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