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도 끝난 김에, 집에 처박혀 있던 미독서적들을 읽으려고 책장 첫칸부터 안읽은 책들을 찾았다. 거기서 가장 처음에 걸린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오오...

한눈에 보기에도 지루하고 고전적일 것 같은 제목이다.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해서 사형당할때 까지의 이야기와, 소크라테스가 참석했던 어느 잔치에서 했었던 연설을 모아둔 것이다. 저자는 무려 플라톤.

그를 고발한 자들은 그가 무신론자이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죄악에 빠지도록 했다는 혐의로 고발하였고, 그에 따라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고발 조항들을 하나씩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의 철학에 대해 재판관들에게 말한다. 물론 그는 재판관들을 기분나쁘게 하였고, 결국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몇가지 있다.

첫째, 그는 스스로 다른 사람을 선동하거나 한 적이 없다. 그는 신탁에서 자신이 세계 제일의 현자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현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자신이 세계 제일의 현자일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신탁을 부정하기 위하여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진 정치인들, 논객들, 장인들, 선생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들과 얘기를 하면서 그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발견하였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뭔가 아는게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정치인들이 실제로 그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를 물어보면 그들은 아는게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할 뿐 실제로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자체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고, 진리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런 소크라테스와 얘기하다보면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서슴없이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 - 그들 자신이 모른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실 - 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들의 기분을 나쁘게 했기 때문이다. 딱히 뭔가 잘못을 한 건 없고, 그냥 기분을 나쁘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혜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은 당연히 그런 소크라테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아는것이 없는 정치인들에게 뭔가를 들어봐야 결국 아는게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갖고 그것을 실천하였다. 이미 2천년도 넘는 과거이므로 그때의 과학적 진리들이나 도덕적 가치들이 지금과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알고있는 몇가지 진리에 대하여 항상 일관적인 태도를 견지하였으며, 그 결과로서 자신의 운명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된다 하더라도 굽히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생명보다 훨씬 가치가 떨어지는 물질적 이익에 자신의 학문을 굽히고 그때까지 배운 진리를 굽히는 현대의 학자들이 소크라테스로부터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신념과 이성을 무기로 그는 그를 반대하는 세상과 맞섰다. 그 결과는 사형이고, 결과적으로 죽었다. 그 속에서도 그는 진리가 무엇인지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셋째, 그는 자신의 신념과 자신이 믿는 진리가 실제로 올바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성과 논리를 사용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그는 자신이 인정한 근거가 아니라 상대방이 인정한 근거를 사용하였다. 그의 논리는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있는, 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몇가지 사실을 근거로 하여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려면 소크라테스가 옳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가 다른 소피스트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논증에 실패하거나, 자신이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소피스트들은 자신이 반드시 이겨야만 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참된 진리인가와 상관 없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넷째, 그는 자신이 있는 현실을 인정하였다. 사형을 언도받고 집행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그가 탈옥하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탈옥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으며, 그가 탈옥한다고 해서 그를 욕할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탈옥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아테네에 살고 있었고, 따라서 그것은 자신이 아테네를 사랑하는 만큼 아테네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겠다는 뜻이었다. 절대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만한 정신이 아닌 것이다. 악법도 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서 자신이 사형을 언도받았을 때, 탈옥할 수 있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인간이 있을 것인가?

여러가지로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과 맞물려서 읽히는 작품이었다.

곡학아세하는 학자들은 누구인가?
광화문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배후는 "소크라테스"인가?
이명박은 그렇다면 죽어버린 소크라테스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형"을 언도할 것인가?
by snowall 2008. 6. 8. 1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