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질이 직육면체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을 때, 이 물질의 3차원적 구조 중에서 비교적 짧은 쪽을 흔히 "두께"라고 부른다. 직육면체를 정의하는 길이가 가령 7x4x1이라면, 보통 가장 짧은 길이인 1을 두께라고 부른다.

나노미터 수준의 얇은 막을 만들다 보면 도대체 이놈이 얼마나 두꺼운지 알 수가 없다. 대충 보면 두꺼운 놈은 짙은 색이고 얇은 놈은 옅은 색이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긴 하지만...

하지만 두께 자체가 정확해야 하는 정밀 반도체의 세계에서는 그런 어물쩡 넘어가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 논문이 반려된다.)

내가 반도체를 연구하는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태양전지 반도체 만들때 쓰는 물질을 이용해서 박막을 만들고 이 박막의 두께를 재는 실험을 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점을 정리해 둔다.

누구나 알다시피, 두께를 재고 싶으면 자로 재봐야 한다. 하지만 나노미터 수준의 자는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어도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10억분의 1미터라니깐. 현미경으로 봐도 안보이는 수준이다. 그래서 나타났다, 직접 표면을 만져보면서 두께를 측정해주는 장비이다.


Surfcorder ET-3000이라는 장비이다. 옆에 프린터는 선택사항이랜다. 사고 싶은 사람은 Kosaka Lab.으로 연락하면 된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이 제품을 광고해줘봤자 아무도 안 살테니 안심하고 홍보해 준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바늘을 직접 움직이면서 박막의 두께를 잴 수 있다. 정확히는, 다음과 같은 그래프가 나온다.


잘 보면 0.23부터 0.32정도 사이에 아래로 푹 꺼진 부분이 있다. 여기 부분과 나머지 부분의 높이 차이가 바로 두께가 된다. 박막에 칼등으로 흠집을 내고 실제로 측정을 하는 것이니까.

이 방법의 문제점은 보다시피 값을 정하기가 심히 곤란하다는 점이다. 튀는 점들도 많고 어느 점을 기준점으로 잡아야 할지가 난감하다. 또한 특정한 부분을 일직선으로 따라가면서 측정한 값이기 때문에 저것이 박막 전체의 두께를 대표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 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광학 밀도(Optical density)를 이용한 방법이다. 광학 밀도란 빛이 얼마나 흡수되는가를 측정하는 것인데 물질마다 다 다른 값을 갖는다. 물론 이것은 투명한 물질에 대해서만 측정할 수 있으며 불투명한 물질은 당연히 이 방법을 이용할 수 없다. 원래는 용액에 녹은 용매의 농도를 알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이래 쓰나 저래 쓰나 내게는 두께만 재면 되는 방법이므로 넘어가자.

빛이 통과할 때 물질이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많이 흡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흡수될 것인가? 절반?

가령, A라는 물질을 유리판에 코팅해서 똑같은 두께의 코팅판을 2개 만들었다고 하자. 이 코팅판에 빛을 통과시키는데, 만약 한장을 통과하면 빛의 밝기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자. 두장을 통과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절반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통과하기 전의 빛의 밝기와 통과한 후의 빛의 밝기를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 통과하기 전의 빛이 밝을수록 통과한 후의 빛도 밝다.
2.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빛이 어두워진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두께에 따라 어두워지는 빛의 밝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광양자 모형을 도입해 보자.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모형에 의하면 빛은 특정 진동수를 가지는 입자로 되어 있는데, 그 빛의 밝기는 입자의 수에 의해서 결정되고 빛이 가지는 에너지는 입자의 진동수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런 특징을 가진 어떤 것이 광학적 매질을 통과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 보면 광학 밀도를 이용해서 두께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지 탐구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생각. 광양자 하나하나를 갖고 매질에 통과시켜보면서 뭔가를 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두뇌만을 갖고 뭔가를 상상해보자. (사실 광학 실험실 아니면 정밀한 측정은 하기 어렵다.)

광양자가 물질을 지나갈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딱 2가지 종류가 있다. 흡수(Absortion) 아니면 방출(Emission)이다. 이때, 하나의 물질 입자가 광양자를 흡수하고 다시 방출하는 것을 "산란(Scattering)"이라고 부른다. 알을 낳는 것이 아님에 주의하자.[각주:1] 산란에서도 광양자의 진동수가 바뀌는 산란이 있고 바뀌지 않는 산란이 있는 등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여기서는 그런건 신경쓰지 말고 "흡수"만을 생각해 보자.

물질을 통과하기 전에 100개의 광양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광양자가 물질을 통과하고 났더니 30개만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만약 물질을 통과하기 전에 1000개의 광양자가 있었다면 물질을 통과한 후에는 광양자가 몇개나 남아있을까? 복잡하개 생각할 필요 없이, 100개씩 10번 통과시키면 될 일이다. 따라서 300개의 광양자가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물질을 통과해서 나온 광양자를 다시한번 그 물질에 또 통과시킨다면? 100개씩 3번 통과시키면 되니까, 이번엔 90개의 광양자만이 남게 된다. 한번 더? 100개씩 0.9번?? 슬슬 감이 왔겠지만, 언제나 살아남는 광양자의 수는 통과하기 전의 30%가 된다. 따라서 이번엔 27개의 광양자이다. 한번 더 통과시키면 얼마나 남을지 물어보는건 직접 생각해 보자.[각주:2]

이 시점에서, 빛이 흡수되는 양과 두께 사이에 어떤 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확히는, 두께의 지수함수가 빛이 흡수되는 양이다. 흡수되는 양은 두꺼워질 수록 곱셈으로 늘어난다. 두께는 덧셈으로 늘어난다. 하나는 곱셈이고 하나는 덧셈인데, 덧셈과 곱셈을 연결시켜주는 함수는 딱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수함수이고, 다른 하나는 로그함수이다. 여기서는 지수함수를 사용해 보자.

요점만 말하자면, 처음의 빛의 밝기가 라고 했을 때, 두께 t이고 빛을 통과시키는 물질을 통과했을 때, 만약 이 물질이 균일하다고 한다면 물질을 통과한 후의 빛의 밝기 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이때 는 물질마다 달라지는 어떤 상수값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그 값을 알고 있다면, 통과하기 전과 통과한 후의 빛의 밝기를 측정해서 두께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함수는 여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위와 같이 어떤 양에 따라서 지수함수의 형태로 감소하는, 그런 값들은 물리에서 너무 자주 나온다. 가령, 다음과 같은 볼츠만 분포가 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에너지는 더해지는 값이고 확률은 곱해지는 값이다. (k는 볼츠만 상수이고 T는 온도이다.)

또한, 반감기 문제에서도 자주 나오는 것들이다.


(T는 반감기이고 t는 시간, 는 원래 있었던 양이다)

그럼 도대체 이 문제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길래 비슷한 형태로 나오게 되는 것일까?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확률에 의해서 지배되는 현상을 표현한다는 것이 있다. 볼츠만 분포를 빼고, 나머지 두개는 반응 속도가 남아있는 양에 비례한다는 특징이 있다. (화학 반응식에서도 비슷한 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아주 얇은 박막의 두께를 재고 싶으면 물질에 빛을 투과시켜서 얼마나 빛이 어두워지는지 조사하면 된다. 위에 얘기한 값만 미리 측정해 둔다면 뭐든지 다 조사할 수 있다.

(글을 한달 넘게 붙들고 쓰다보니 원래 뭘 쓰려고 했었는지 잊어서 여기까지만 적어둔다. 궁금한점, 오류, 오타, 보충 등은 댓글로...)


  1. 어떤 의미에서는 입자라고 부르는 "알"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뭔가를 내보낸다는 점에서 "알을 낳는다"는 표현이 어울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래도 시적 표현일 뿐 물리학적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묘사이다. [본문으로]
  2.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10%의 확률로 9개가 살아남고 90%의 확률로 8개가 살아남게 된다. 실험을 수천번 해보면 그런 결과가 얼추 비슷하게 나올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신비라고나 할까. [본문으로]
by snowall 2009. 12. 25. 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