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학교 후배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쓸데없이 얘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결국 새벽에 자게 되었다. 그 대화의 요점은, "너 그렇게 살지 마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너"는 snowall이다. (후배 주제에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후배가 누구인지는 내 동기와 선배님들은 알 것이다. 나도 개념은 국끓여먹은 인간이지만 말이다.)

그 후배가 주장하는 것은, 내가 너무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멍청하게 살고 있으며, 조금만 신경쓰면 더 편하게 살고 더 확실하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데 그런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원 다닐 때 지도교수님이랑 싸운 것도 그렇고, 교수님이 나 말고 다른 학생을 좀 더 밀어줬다는 것도 그렇다. (심지어 그 학생은 다른 유명 대학의 대학원으로 진학한 상태였는데도.)

구구절절히 맞는 말이다. 근데 편하게 살거였으면 굳이 이러고 살 이유가 없다. 그 후배가 아마 고등학교때 나를 봤으면 미친놈이라고 했을 듯 싶다. 그건 내가 서울대나 연세대 또는 고려대 정도의 학교를 충분히 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아쉬움 없이 중앙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했더라도 포기하고 2학기 수시모집 또는 정시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때 중앙대를 가기로 선택한 것은 지금도 전혀 후회가 되지 않는다. 내가 중앙대를 가기로 한 것은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과학/수학 이외의 다른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짜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걸 포기하고 공부를 더 한다고 하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합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난 절대로 배수의 진을 치지 않는다.

그 후배는 나에게 어떻게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지 매우 자세한 얘기를 해 주었다. 철저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선물이 먹히는 것이고, 뒤가 켕기게 되는 법이라고 얘기를 했다. 나에게 윗사람들에게 양주 선물도 주고, 사모님한테 꽃다발도 보내고, 갖은 아첨을 떨면서, 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 자기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지도교수라고 해서 그냥 추천서 써주고 마는게 아니라, 학회 가서 세미나 하나를 더 잡아주고, 학교에서 강연에 한번 더 초청해주고, 그런식으로 자기를 이끌어 줄 자기편 하나가 생긴다고 한다. 소위, 배째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것을 다 해야 한다고 조언해 줬다.

결국은 가치관의 차이인데, 난 전혀 그렇게 살 생각이 없다. 3시간동안 붙들고 날 설득한 그 후배한테는 미안하지만, 남들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평할 생각은 없지만, 난 그렇게 살고싶지 않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아니, 심지어 난 성공할 생각도 강하지 않다. 물리 생각하기에도 복잡한 머리에, 누구한테 어떻게 말하고 누구의 어떤 기념일을 챙길지까지 생각해야 하나? 이미 17살 때 이후로는, 신경쓰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는 것들은 철저하게 신경쓰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어쩌면, 나는 "난 깨끗한 놈이야"라는 허세나 오만 같은 것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앞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 꺼내오자면, 지도교수님이 다른 학생이랑 쓴 논문은 PR E에 실렸다. 이 저널은 입자 물리학 쪽에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꽤 중요한 저널이다. 그것에 대한 중요 아이디어를 내던 자리에 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나는 졸업논문과 관련된 주제에 집중했고 (교수님도 그렇게 시켰고), 그 학생은 그 주제로 계속 연구를 해서 결국 학부생으로서 PR E에 그 결과를 실었다. 그것도 제1저자로서. 내가 연구하던 주제는 JKPS에 실렸다. JKPS도 괜찮은 저널이지만 PR E보다는 떨어지는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난 그 논문에 제2저자로 실렸다. 후배의 말에 의하면, 내가 교수님에게 잘보였다면 그 주제가 내 것이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건 사실이긴 하다. 당시 난 교수님이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입자물리를 포기할까도 심각하게 여러번 고민했었고, 대학원 때려치고 군대로 도망갈까 생각도 하루에 수십번씩 생각했다. 아무튼간에 난 계속 붙어 있었고, 그럭저럭 졸업논문을 완성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분명한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수하고, 잘못하고, 싫어하고, 거부하고, 차단하고, 멀어지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다. 그럼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일까? 무의식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일까?

까놓고 말해서, 내가 서울대를 갔으면, 난 행복했을까?

그 후배 말대로, 윗사람들 똥꼬 빨아주면서 내 뒤좀 잘 봐달라고 얘기하면, 내가 행복할까? 그 후배는 내가 거기서 왜 고민하는지 도저히 이해 못할 것이다. 편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뭐하러 괜히 고생하는지 평생 얘기해줘도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 후배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예전에 이 블로그의 글 중에, 기독교인을 싫어하는 이유중의 하나로 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행복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점이다. 난 자유로울 때 비로소 행복하다. 몸은 비록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난 내가 생각하는 바에 있어서는 어떠한 제한도 제약도 두지 않고 모든 자유로운 생각을 다 하고 싶다. 이것은 나의 모든 가치관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 후배는 나에게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행복해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쉽다. 그냥 지금 이순간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 "느낌"이란 가장 주관적인 항목이기 때문에, 생각 한끗발만 고쳐먹으면 순식간에 행복해질 수 있다. "난 xxx해서 행복해"라고 말한다면, xxx라는 조건이 사라지는 경우에 불행해질 것인가? 윗사람들한테 그렇게 부탁하고 잘 얘기해서 성공했다면, 반대로 그 사람들이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한테서 더 괜찮은 선물과 함께 청탁을 받고 날 무너트릴 수도 있다. 그럼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삶이다. 난 그렇게 살고싶지 않다.

난 참 소심한 사람이다. 남들에게 짜증을 내지 못하고, 싫은소리 하지 못하고, 남을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여리고 착하다. 현재에 항상 만족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묵묵히 감수하며, 남이 부탁한건 다 들어주며, 제 몫을 챙기지 못한다. 한마디로, 좀 병신같은 놈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반대로 살고 있다. 자기 몫은 다 챙기고, 남이 부탁할 때 항상 댓가를 바라고, 미운 사람과 좋은 사람을 뚜렷이 구별한다. 가끔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손해를 보는게 너무 많았던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부러워만 할 텐가?

내가 "옳은지" 또는 "틀렸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답이 내가 이렇게 살겠다는 결심에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다. 틀렸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은 스스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간다. (적어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은 해봤었을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좌절하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후에, 비로소 그는 좌절할 수 있게 된다. 좌절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이상, 좌절하는건 당연한 결론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성취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없지 싶다. 특히 현대,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이 좌절하는데 자신이 좌절했다는 것은 결국 자기 일이니까 엄청난 일이지 전체로 보면 별것 아니다.

그래서 나는 소심한 성격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건 나의 "특징"이지 "단점"이 아니다. 마치, 내가 남자이고, 한국인이라는 것과 같은,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바꿔 나가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다. 성격이라는 것이 참 바꾸기 힘든 것인데, 바꾸려고 해도 바꿀수 없는 부분이라면 관점을 바꿔서 그것을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나의 소심함은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치환시킬 예정이다. 아직은 생각의 깊이가 그다지 깊지는 않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배가 한 얘기 중, 하나를 더 짚어보자면 내가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서 저평가 받고 있기 때문에 착취당하고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지 못하며 고생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보여질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그래프 1000개 그리는 삽질을 할 때는 손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대다수의 신입사원들 또한 그들이 들어간 회사에서 스프레드시트로 그래프 그리고, 마케팅 자료에서 통계 처리를 하고(분석은 안함),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쓸데없는 서류들을 복사하고 처리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고등학교까지만 배웠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다. 대학교, 대학원까지 마친 그들이 쓸데없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저평가일 것이다. 참고로, 난 그래프 1000개 그리기 같은 거의 기계화되었어야 할 단순 사무, 실험실에서 실험 장비 세팅하고 점검하고 운영하는 노가다성 업무, 실험에 관련된 특허 문서를 작성하는 정신 노동까지 다 한다. 아주 쉬운 것부터 아주 어려운것까지 전부. 이젠 레이저-플라즈마 상호작용의 컴퓨터 시뮬레이션까지 시킬 테세다. 내가 저평가 되었다면 그냥 단순한 노가다만 시켰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시킨다고 다 잘해버리는 나도 내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입자물리학 전공을 하고 싶은건 사실이고,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주제들은 사실 내가 하려는 입자물리와는 거리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기에 전혀 흥미가 없거나 재미가 없는건 아니다. 해서 나쁠게 뭔가. 그냥 하면 되는거지.

모 통신사에서 "생각대로 해, 그게 정답이야"라는 문구로 광고를 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대로 해서 뭐가 되겠어?"라든가 "병신아, 생각대로 하면 망해"라든가,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진짜로 "생각 그대로" 하고싶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도대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진짜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진짜로 내 생각대로 살 생각이다. 비웃든, 부러워하든, 망하든, 성공하든.

조상님중의 한분인 남이 장군의 "북정가"로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자가 스무살에 나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랴”
http://snowall.tistory.com/926
by snowall 2010. 3. 26.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