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블로그란, 내 마음속에 있는 잡다한 것들을 전부 꺼내놓는 곳이다. 원래, 나란 인간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그 속은 굉장히 외로워 하고 있어서, 누군가에게 항상 칭찬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고, 적어도 하나는 자랑하고 싶고, 누구보다 뛰어나고 싶다. 남들이 볼 때는 잘난척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게다가 머리는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이라, 생각의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상상들은 정말 많다. 전공이 물리학이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도 엄청나게 상상하고, 사회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역시 무진장 많이 상상한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구별이 거의 없다. 다만, 이것들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때 적당히 걸러져서 현실에 가까운 것들만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걸러져서 남은 찌꺼기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있게 되는데, 이걸 그냥 쌓아두면 썩어서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 같다. 따라서, 그런 생각들의 일부를 꺼내서 블로그에 남겨두는 것이다. 이것들은 점점 쌓여서 썩어가고, 결국 내 사상에는 악과 독과 아집과 편견만 남았다. 그리고 이것이 내 종교이자 신앙이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쌓여가는데 이것을 막아내서 나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상당히 힘든 작업이다. 물론 이 모든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힘든건 나뿐이고, 해결하기는 그냥 간단하게 내가 생각을 고쳐먹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어디 쉬운 일인가. 애인이라도 있으면 털어놓겠는데, 친구라도 있으면 얘기하겠는데, 어디에도 그럴만한 친구가 없으니 블로그에 정제해서 내려놓는다. 이런 생각들을 얘기할 정도로 친한 친구는 그 또한 자기 삶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한번 만나자고 날짜 잡는것도 일이다. 따라서 내 블로그는 내 마음속에 있는 독들을 내려놓는 공개의 장이다. 방문하는 손님들이 남기고 가는 여러 댓글들은 내 정신에 칭찬으로 받아들여져서 스스로의 위안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어느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같은 쓰레기같은 글들은 쓰고싶지 않다. 일부러 낚시를 위한 글 역시 쓰고싶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거대한 판타지가 구축되어 있어서, 견고한 성벽으로 보호되고 있다. 우울증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해 보긴 했다. 실제로 우울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우울증이, 아직은 정상적인 생활을 위협할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일단 놔두고 있다. 언젠가는 치료되었으면 좋겠다.
대학원에 있으면서 느끼는 건 내 천직은 물리학자라는 느낌과 동시에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다. 어느 대학원에 갔더라도 똑같은 느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뭐 다른 대학원에 간 친구들 보면 피차 비슷해 보이긴 한데, 내가 다른 데 갔으면 좀 더 잘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약간 있다. 누군가가 내 마음속을 따뜻하게 위로해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내 정신은 누군가의 진심어린 위로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진심이라는 건 알지만 와닿지가 않는다. 아니, 내가 거부해 버린다. 하고싶은 말 중에서 할 수 있는 말보다 하지 못하는 말이 더 많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블로그라고 해서 내가 모든 얘기를 다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 보다는, 간접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다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 사소한 여유때문에 블로그에 글을 쓸 정도로 답답하다.
요새 드는 생각은, 내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계속 실패하고 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하는 말들의 뜻을 알아주지만, 내가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과 만나야 할 사람과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나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그냥 툭 내뱉으면 그 즉시 오해한다. 시차도 없이 그 즉시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불만이 많고, 그걸 나한테 직접 얘기해서 충고해주기도 한다. 물론 그 충고가 날 진심으로 걱정해서 해준다는 것도 알고, 틀린 충고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실제로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고쳐 나가는 건 너무나 어렵다. 결국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 자체가 조금식 두려워지고 있다. 아니, 실제로는 두렵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고 완전히 포장해서 그 가면쓴 모습만 보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자기 내면을 보이지 않고 가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며, 내가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그 가면을 내 앞에서 벗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역시 내게 나의 속마음을 보일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면을 쓰고 다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난 어쩐일인지 그게 어색하다. 내게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일이다. 모든 문장을 검열해서 내보내는 건 아직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 물리학이랑 수학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물리와 수학은 가려서 말할게 없다. 그냥 내 생각을 얘기하면 되는 거고, 논리적으로 맞으면 된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면 그냥 그걸 받아들이면 된다. 세상 사람들과 평범한 얘기를 할 때는, 배워야 할 배경지식도 산더미같이 많고 각 문장을 얘기할 때마다 그 대답을 예상하면서 얘기를 해야 한다. 물론 이런걸 실제로 의식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 경우, 이런걸 아주 신경써서 의식하지 않으면 대화의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분위기 파악이 안된다. 결국, 왕따라는 거다. 실제로도 어릴때는 상당히 따돌림을 당했었다. 하지만 과학이나 수학은 내가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그냥 듣고 있으면 된다. 왜 말 안하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궁금하면 물어보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TV드라마 얘기, 가령 "주몽"이나 "환상의 커플"얘기를 하면, TV를 즐겨 보지 않는 내게 그 얘기는 그냥 역사 얘기, 커플 얘기 정도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모른다. 거기서 송일국이 고구려를 건국했는지 말았는지는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즐겨서 하고, 그런 대화에 끼어있지 않으면 나는 역시 소외된다. 그렇다고 내가 TV를 챙겨서 볼 정도로 시간이 남는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내가 하는 말은 대부분 달아오른 분위기를 깨서 그 판을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 그냥 가만히 듣고있으면 되는데, 앞서 얘기했듯이 난 나서기 좋아하고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냥 그렇게 듣기만 하는 것도 곤욕이다.
이런 사람이, 차라리 철저하게 물리학에 미쳐있으면 또 모를까, 그건 아니다. 삶 자체에도 꽤 관심이 있고, 세상에도 궁금한것이 너무 많으며, 해보고 싶은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물리학은 그중 가장 신나고 재미있는 것일 뿐이다.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하고, 사회운동도 참여해보고싶다. 화학이나 생물학도 재미있어보이고, 복잡계연구도 흥미롭기만 하다. 판타지 소설도 좋아하고 무협지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소설들을 쓰는 것 역시 좋아한다. 썩어돌아가는 정치판을 보면 내가 확 바꾸고 싶기도 하다. 관심가는 건 너무 많은데 현재는 그걸 다 해볼만한 능력도 시간도 없다. 이럴때마다 드는 생각은 빨리 커서 자리잡고 여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모난 돌은 정을 맞는다고 했다. 계속 맞다보면 나도 언젠가는 둥글둥글해지지 않을까?
내 머리가 좋긴 하지만, 실제로 천재는 아니다. 그냥 단지 물리와 수학 쪽으로 약간의 재능이 있던 걸 갈고 닦았을 뿐이다. 얻은건 학점이고 잃은건 사회성인걸까.
스스로가 힘든걸 알고, 계속 스스로를 다독여주면서, 나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며 계속 버티고 있다. 버티기만 할 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실제로는 잘 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잘 할 거다. 하지만 그런다고 힘든게 안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괴로운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익숙해져서 모르게 되더라도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결국, 내 정신은 성장하지 못했는데 사회에서는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는 거다. 어른스러운척을 하든 실제로 어른이 되었든, 아무튼 겉보기에는 어른이 되어서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가야만 한다. 아주, 힘든 작업이다. 수만번의 실패와 연습이 필요하다. 부디, 그 실패 속에 치명적인 실패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by snowall 2007. 1. 16. 10:54